(402)오, 로즈(Oh, Rose)-1
사람의 운명은 묘하다.
너무나 강렬하게 원하고 집착하는 것은 대체로 운명에서는 허락하지 않는다.
운명이 끌고 밀어당기는 자력이 묘하다.
그래서 인생은 드라마틱하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보름달은 절정이고 충만이지만 한편으로는 불안이고 추락이다.
고독에 몸부림치던 외롭던 유학시절,
마침내 유미는 이유진의 몸과 마음을 쟁취했지만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치명적인 독을 내포하고 있었다.
배신과 절망이라는…. 그러나 인생은 돌고 돌며 과거의 교훈은 헛되지 않다.
현재 윤동진에게서 받은 배신과 절망으로 은둔과 추락의 시간을 보내는 유미는
이제 다시 보름달처럼 충만과 절정을 향해 부풀어 오를 것이다.
인생에 절대적인 강자는 없다.
인생이라는 파도타기에 능한, 순발력이 강한 사람은 있을지라도.
유미는 자신의 생에 그렇게 자기 암시를 하며 그 옛날 이유진의 아파트를 나와서
다니엘의 아파트로 옮겨갔다.
다니엘은 친절했다.
그리고 다니엘의 복층 아파트 위층은 쾌적하고 독립적이었다.
다만 약속한 대로 유미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아래층으로 내려와
그와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유미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며 그는 즐거워했다.
그는 그것을, 돈은 많지만 ‘가정적인 행복감’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던
자의 소박한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오랜 독신 생활에서 오는 생활의 외로움을 다니엘은 그렇게 잠시 누리고 싶어했다.
물론 밤의 외로움까지 유미가 책임질 일은 없었다.
그의 유부녀 애인 소피는 1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들렀다.
그들은 집에서만 만나는 눈치였다.
함께 식사를 하고 다니엘의 방으로 들어가서는 11시 전에 반드시 나왔다.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은 적도 있었다.
40대의 다소 통통한 몸집의 그녀는 겉으로는 매력적인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유미를 바라보는 눈길은 마뜩치 않아 보였다.
질투와 불안이 뒤섞인 나이 먹은 여자의 우아하며 위선적인 얼굴을 보며 유미는
가능한 한 그녀가 오는 날이면 제 방에서 두문불출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다니엘이 조심스레 말했다.
“소피가 유미를 보고 장미처럼 아름답대.”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다니엘의 표정이 묘했다.
“그래서 말인데….”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제가 여기 있어서 불편하시죠. 소피의 마음 이해해요.”
유미가 눈치껏 찔러 보았다.
“그게… 명분 없이 젊은 여자를 집에 들였다고 말이지. 여자의 질투라고나 할까.”
“그럼 간단하네요. 제가 나가면 되겠네요.”
“아니, 그럴 순 없지.”
‘난 밤의 쾌락만큼 아침의 상큼함도 놓칠 순 없어.’
유미는 다니엘이 이렇게 속으로 말하는 게 느껴졌다.
‘이런 욕심은, 빵꾸 똥꾸 욕심쟁이.’
“그럼 어쩌죠?”
“명분을 만드는 거지. 두 가지 방법이 있어.
내가 우리 갤러리에서 아시아 마케팅 담당 직원으로 유미를 스카우트했다고 소피에게 말했거든.
그러니 우리 갤러리 명함 하나 박고, 가끔 1주일에 한두 번 갤러리에 얼굴을 내밀어줘.
전에 못생긴 미국 출신 여직원을 우리 집에 기거하게 해 준 선례가 있거든.
소피가 사업상 간섭은 안 하니까.”
듣고 보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안 그래도 다니엘과 모양 좋게 사업상 관계를 트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때 다니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건 사적인 부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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