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키다리 오빠-22
입술이 빈틈없이 포개진 두 사람은 코로 뜨겁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문득 유미의 얼굴에 그의 눈이 부딪혔을 때 물기가 느껴졌다.
순간 유미는 약간 의아했다.
눈물일까? 아냐, 땀이겠지.
마침내 유진은 흐느끼듯 어깨를 떨고는 유미를 침대로 던지고는 야수처럼 덮치기 시작했다.
한 번 폭발한 야수의 본능은 거침없이 공격적이었다.
그동안 그는 어떻게 참고 있었을까.
그는 육식동물이 희생자인 초식동물을 갖고 놀듯이
유미의 몸을 구석구석 뜯어먹을 듯이 공략했다.
오래 굶주린 야수처럼 목숨을 걸고 포식하듯 섹스를 했다.
불을 켜지 않은 완전한 어둠 속에서 그는 짐승의 포효와도 흡사하고,
무언가를 체념한 인간의 흐느낌 같기도 한 묘한 신음소리를 냈다.
유미는 그것이 섹스 자체만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의 표정을 알 수는 없지만, 왠지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반란을 겪고 난 후
혁명과도 같은 섹스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섹스가 단지 쾌락의 몸부림이 아니라
무언가 치명적인 대가를 치르게 될 사랑의 전주곡처럼 느껴졌다.
그 느낌을 두 사람이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는 느낌이 또 확신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차라리 그 섹스는 장렬했다.
온몸이 아프도록 공략을 당한 유미가 지쳐 떨어질 즈음에
그는 연달아 두 번 사정하고는 유미의 가슴에 얌전하게 머리를 묻었다.
“미안하다.”
“…?”
유미의 젖가슴 위에서 천천히 그의 입술이 뜨거운 입김과 함께 움직였다.
“충동 때문이 아니었다. 오래 생각했어. 후회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유미는 대답 대신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화제를 돌렸다.
“악몽을 꿨어요?”
“으음, 가끔 그래.”
“무슨 힘든 일 있어요?”
“이게 힘든 일이지. 너를 보호해야 할 놈이….”
“복무규정을 어겨서?”
유미가 웃으며 물었다.
그러나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젠 너를 보호해줄 수 없을지 몰라. 어쩌면 내 자신까지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야.”
“아이, 그게 무슨 말이야?”
“넌 몰라도 돼. 그런데 난 지금 너무 편안해.”
“그럼 된 거 아냐?”
“그래. 그럼 된 거겠지. 나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거겠지….”
유진이 서서히 잠으로 빠져들었다.
좁은 싱글 베드에 포개어 누운 유진의 몸이 무거웠지만 유미는 가만히 있었다.
이상하게 몸은 무거운데 유미 또한 편안하고 달콤한 잠으로 빠지려 했다.
갑자기 유진이 유미를 안고 몸을 뒤집었다.
이제는 유미가 유진의 몸 위에 올라가 있게 됐다.
“가지마. 우리 이렇게 잠들자. 이렇게 죽어도 좋을 거 같다.”
유진이 유미를 꼭 안았다.
달콤한 잠이 밀려들었다.
포개어 잠들었던 두 사람은 곧 아침이 밝자
그대로 안고는 폭풍 같던 밤과는 달리 부드러운 섹스로 새날을 열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둠이 물러간 시각,
유미는 유진의 눈에서 처음으로 ‘사랑’이란 단어를 읽었다.
유미는 가슴이 따스해지고 먹먹했다.
이유진이란 남자를 만난 지 1년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외로운 땅, 프랑스에 와서 그 세월 동안 에둘러 먼 길을 돌아 마침내
그의 가슴에 둥지를 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치명적인 사랑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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