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 키다리 오빠-20
유미는 곧바로 짐을 싸서 파리로 함께 올라가길 종용하는 유진에게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다.
그것은 돈이 입금되었다는 유혹적인 먹이도 먹이지만 그 자신의 말대로 ‘쪽팔림’을 감수하고
나체촌에 나타나준 유진이 내심 반갑고도 고마웠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체캠프에 완전히 동화되지도 못하고 더 이상 즐길 마음도 별로 동하지 않던 유미였다.
마침 돈이 입금된 걸 핑계 대고 유미가 걱정스러워 찾아와 준 유진의 속마음이 느껴졌다.
난 너를 보호해야 해.
그 말을 하는 유진의 나직한 목소리에 유미는 속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안심이 되었다.
나체캠프에서 마치 미아(迷兒) 같던 자신을 찾으러 와준 오빠처럼 유진에게 와락 친밀감이
느껴졌다.
오후 늦게 유진의 차를 타고 두 사람은 파리를 향해 출발했다.
바캉스철의 마지막 주라 그런지 고속도로는 정체가 심했다.
당일에 파리에 도착하려 했던 계획이 어긋났다.
디종 부근의 휴게소에서 늦은 저녁을 함께 먹고 나니 열시가 넘었다.
유진은 몹시 지쳐 보였다. 파리까지는 최소 세 시간 이상은 더 달려야 했다.
유진도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디종 시내로 진입했다.
유진은 방을 두 개 얻으려 했지만 토요일 늦은 시간의 호텔에는 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트윈 베드가 있는 작은 방 하나를 얻게 되었다.
유진은 먼저 씻겠다고 하더니 욕실로 들어갔다.
그가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샤워하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으니 이상하게 온몸이 뜨거워졌다.
티셔츠와 꽉 끼는 청바지까지 입어 더워서 그런 걸까?
그렇다고 나체촌에서처럼 훌렁 벗고 싶은 생각도 없다.
옷을 입고 앉아 욕실 안의 남자가 알몸으로 샤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이렇게 묘한 기분이 들다니.
며칠간 보낸 알몸의 세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야릇한 설렘이었다.
유미는 작은 창으로 시내의 불빛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들어가 씻어라.”
유진의 목소리에 유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샤워 후에도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서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유진답다.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끝낸 유미도 헐렁하고 편한 원피스로 갈아입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유진은 그 사이에 자신의 침대에 들어가 누워 있었다. 벌써 자는 걸까?
“오빠, 자?”
“…….”
유진에게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머쓱한 기분이 든 유미도 머리칼을 말리고 나서 자신의 침대에 들었다.
벌써 자정이 넘었다.
머리맡의 등을 끄고 누우니 기다렸다는 듯이 유진이 잘 자라는 인사를 했다.
“본 뉘.”
“오빠도.”
캄캄한 실내에 숨소리만 들릴 뿐 적막이 흘렀다.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못 이루는 기척을 유진이 아는 것도 싫다.
유진이 차라리 코를 골며 깊이 잠들었으면 좋으련만 그에게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 역시 잠들지 못하고 숨소리마저 통제하는 긴장 상태인 걸 공기로 감지할 수 있었다.
잠을 자려고 할수록 방안의 공기가 팽팽해지는 게 더 느껴졌다.
술이라도 한 병 사올 걸.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다 잠든 시각이다.
유진이 몰래 조용히 한숨을 뱉어내는 소리를 유미는 들었다.
젊은 청춘 남녀가 한방에 누워 이렇게 잠들지 못하고 누워 있는 꼴이 우스웠다.
두 사람 모두 한여름에 옷을 단단히 입고서 숨소리를 죽여가며 누워 있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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