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 키다리 오빠-17
다음날 유미는 시몽과의 섹스 후유증으로 온몸에 과부하가 걸려 오전 내내 텐트에 누워 있었다.
발레리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발레리는 어제 혼자 잤느냐고 물었다.
유미는 솔직하게 시몽과 해변에서 함께했던 ‘원시의 밤’에 대해 말해주었다.
“어땠니?”
발레리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지만,
유미는 그런 미묘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프랑스어로 전할 능력이 없었다.
단 하나 떠오르는 단어로 말할 수밖에.
“그는 무슈 그로스바트야.”
발레리가 킥킥댔다.
오후에는 동양철학에 대한 강연을 들으러 가는 발레리와 헤어져 유미는
힐링센터에서 열리는 마시지 교실에 참가하였다.
말이 필요없는 강의로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부부나 연인에게 권장되는 마사지라고 했다.
강사가 한 번씩 시범을 보이면 따라하는 것이었다.
모두 열한 명이었는데 강사를 빼고는 이상하게 남녀가 짝이 맞았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어깨와 배에 오일을 바르고 강사의 설명에 따라 문지르는 것이었다.
유미는 곁에 있는 어떤 남자와 짝이 되었다.
그는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자였는데 잘 웃지 않고 무뚝뚝했다.
그러나 유미의 손길이 닿자 자동적으로 그의 몸 복판에서 ‘차단기’가 올라갔다.
그 역시 그런 반응에 좀 놀라고 민망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다른 침상의 남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비슷했다.
나중에 그 교실을 나올 때 남자는 자신이 독신이며 고등학교 수학교사라고 소개했다.
한낮의 열기가 숙지근해졌을 때 유미는 홀로 나체촌의 전용해변으로 나가보았다.
남녀노소 누구나 당당하게 일광욕을 하거나 입욕을 하거나 백사장에서 공놀이를 했다.
아직은 낯설지만 평화롭게 보이기도 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그들의 눈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 수 없다.
유미 또한 햇빛 때문에 선글라스를 썼다.
진작 착용할 걸. 참 이상했다.
이걸 쓰니까 옷을 벗고 있어도 훨씬 덜 부끄러웠다.
눈 둘 곳이 없다가 검은 안경을 쓰니 한결 편안했다.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는 것도 선글라스 안에서는 교묘하게 위장이 되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선글라스에 빛이 튕겨 나왔다.
어쩌면 그것은 반사되는 햇빛이 아니라 선글라스 안의 그들의 안광(眼光)인지도 모른다.
유미 또한 백사장에 타월을 깐 뒤 선탠오일을 온몸에 바르고 선글라스를 낀 눈으로
탐조등처럼 해변을 샅샅이 훑고 있다.
잘생긴 남자들은 이미 여자들과 함께 있었다.
혼자 있는 남자들은 얌전히 포즈를 취하고 있어도 짝짓기의 갈망으로 가득차 있는 게 보였다.
남자의 몸은 여자에 비해 너무 순진하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니까.
나이든 남자 몇은 몰래 찜한 여자를 바라보며 수음을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오는지 유미가 누워있는 모래밭이 들썩였다.
미셸이었다.
어젯밤 빨간 머리 여자랑 눈이 맞아 클럽에서 나갔던 남자지만 해변에서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유미, 어때요? 재미있어?”
“보다시피….”
유미가 웃었다.
그가 유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 등에 오일 좀 발라줘요.”
그가 유미에게 올리브오일을 내밀었다.
“선탠하면 야성적으로 보이겠죠?”
희미한 금발에 얼굴이 흰 그가 햇빛에 순두부처럼 하얗게 뭉개지며 웃었다.
유미는 그의 등판에 오일을 발라주었다.
“유미 등에는 내가 발라줄게요.”
그가 유미의 어깨를 잡았다.
그가 유미의 뒷목덜미에서부터 등으로 내려오는 곡선을 미끄러지듯이 마사지했다.
“등이 꼭 바이올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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