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 키다리 오빠-18
유미는 미셸과 나란히 누워 선탠을 했다.
“유미, 오늘밤 내가 멋진 데를 안내할게요.”
엎드려 있던 미셸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어디?”
“해변에 쌍쌍이 모이는 장소가 있어요.”
미셸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혹시 원시의 밤 축제?”
유미는 지난밤의 모닥불 앞의 남자들이 생각나서 물었다.
“농!”
미셸이 고개를 단호하게 흔들었다.
“남자와 여자. 아주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커플들의 오케스트라 같은 거지.”
오케스트라. 미셸의 비유가 모호하긴 했지만
유미는 아마도 남녀 커플들의 집단 짝짓기가 아닐까, 짐작했다.
발레리에게 들은 적이 있다. 경험 많은 노련한 한 여자가 남자 파트너를
펠라치오로 예열시키면 그 열기가 서서히 번져 모든 커플들이 군무를 추듯 섹스를 한다고 했다.
집단섹스를 하는 그 모습을 상상하니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 영화 속의 펭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미는 푸른 바다와 흰 백사장 위에 옹기종기 모여 선탠을 하는 누드족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펭귄이 아니라 무슨 새로운 종의 바다짐승들처럼 보였다.
오일을 발라 피부가 번들거리고 검붉게 달아오른 사람들은 변종 고래 무리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사람들 중에서 암컷과 수컷이 달빛 아래 해변에서 짝짓기를 하는 모습은 어떨까.
한 커플의 리드에 따라 짐승들처럼 집단섹스를 하는 그 모습이 일사불란한 오케스트라처럼
장관일까?
그때 돌고래 무리 속에서 ‘인간’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 인간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연방 휴대전화를 누르며
해변을 헤매고 다니는 인간 수컷이었다.
바다짐승들의 세계에 뛰어든 침입자처럼 그 모습이 튀었다.
사람들도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옷을 입은 인간’의 모습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게 신기했다.
어떤 겁 없는 인간이 이 세계에 뛰어들었을까.
게다가 그는 어깨에 카메라 가방까지 매고 있다.
“유미, 아까부터 계속 전화가 울리네.”
그때 미셸이 유미의 타월 밑에서 울리는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휴대전화는 전원을 꺼두었는데 오늘 따라 발레리와 연락할 일이 있어서
일부러 가져온 휴대전화였다.
유미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여기저기 재미있는 것을 찾아 발발거리고 돌아다니는
‘발발이’ 발레리가 무슨 재미있는 이벤트를 발견한 걸까?
그러나 발신인은 발레리가 아니었다.
유미는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웬일이에요?”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아! 너 지금 어디야?”
이유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어디긴. 남프랑스 나체캠프에 와있다고 했을 텐데.”
“그러니까 어디냐고. 발레리를 만났더니 너가 해변에 있을 거라 그러던데.”
“발레리를 만났다고요?”
“그 얘긴 나중에 하고. 나 해변에 와있어. 여기서 널 찾으려니 눈이 빙빙 돈다.”
유미는 해변을 둘러보았다.
‘옷을 입은 인간’ 하나가 귀에 휴대전화를 대고 해변을 누비고 있었다.
아니 그럼 저 ‘인간’이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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