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 키다리 오빠-15
“난 오늘 밤, 텐트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기다리진 마.”
발레리가 유미의 귀에 귓속말을 하고 사라졌다.
그때 미셸이 다가와 오늘 밤을 함께 보내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거짓을 모르는 그의 몸 또한 강력하게 주장하는 게 눈앞에 보였다.
명백한 유혹이다.
유미는 그가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그는 별 특별할 것도 없는 그냥 그 나이 또래의 젊은 파리지앵이었다.
유미가 그냥 희미하게 웃자 그가 채근하며 물었다.
“확실하게 대답해요. 위 우 농?”
“농, 미안해요.”
“오케이. 그럼 좋은 밤 보내세요.”
미셸이 쿨하게 물러섰다.
그런데 5분도 안 되어 그는 붉은색 머리칼을 가진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았는지 함께 나갔다.
그나마 그가 나가자 사람들의 눈빛이 주인을 잃은 어물전의 생선을 보는 도둑고양이처럼 느껴졌다.
유미의 자격지심인지도 몰랐다.
한국도 아닌, 파리도 아닌, 특별한 곳에 홀로,
그것도 나체로 서 있다는 게 그때는 왜 그리 두려웠을까.
유미가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누가 나직한 목소리로 유미를 불렀다.
돌아보니 시몽이었다.
아까 발레리가 에르베와 둘이 있기를 원했을 때 방갈로를 함께 나왔던 두 사람이었다.
그는 흑인 혼혈 특유의 숱 많은 검은색 곱슬머리와 다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역시 유미보다는 나았지만, 백인이 대부분인 캠핑장의 소수민족이었다.
동병상련일까. 반짝 반가움이 일었다.
시몽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재미없죠? 얼굴이 그래 보이네요.”
유미도 웃었다.
“그냥 그럭저럭….”
“해변으로 가보지 않을래요?”
“지금요?”
“재미있는 이벤트를 하는 곳을 알아요.”
유미는 망설였지만 언제까지고 몸을 사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뭔데요?”
“원시의 밤이라고, 아프리카 음악이 어우러진 축제라 보면 돼요.”
“그러죠….”
“밤에는 추우니까 텐트에 들러 셔츠라도 챙겨가요.”
시몽이 친절하게 말했다. 웃는 모습이 착해 보였다.
텐트로 가서 유미는 헐렁하고 긴 셔츠를 걸쳤다.
시몽도 반바지를 입고 나왔다.
해변으로 가는 동안 시몽이 자기소개를 했다.
자신은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한다고 했다.
프랑스의 옛 식민지였던 세네갈의 이민 3세대이며 자신의 조상은
아프리카 한 부족의 왕족출신이라고 했다.
왕족? 유미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정말요? 로열패밀리네요.”
시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프리카에는 우리가 모르는 부족들도 아주 많을 테니….
해변은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야자수가 우거진 어느 지점에서 아프리카의 손북이 울리는 소리가 탐탐탐….
경쾌하게 들려왔다.
시몽이 어깨를 들썩였다.
근처에 가보니 캠프파이어를 하는지 사람들이 모닥불 가에 둘러서서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개중에는 아프리카 가면을 쓰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는지 아주 음란한 동작으로 누군가의 동작을 따라서 했다.
아프리카 추장이나 원주민 같은 흑인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백인 남자들이었다.
둘러보니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남자들의 춤이 점점 더 낯뜨거워졌다.
유미는 갑자기 위기의식을 느꼈다.
저 남자들이 혹시 공격해온다면?
유미는 놀란 눈으로 시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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