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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 키다리 오빠-14

오늘의 쉼터 2015. 4. 8. 17:33

(393) 키다리 오빠-14

 

 

 

“아니에요!”

유미가 펄쩍 뛰었다.

“그 여자, 좀 전에 어떤 흑인 남자랑 팔짱 끼고 함께 가던 걸요. 놔두세요.

 

나의 자유가 중요하듯, 남의 자유는 존중해야죠.”

아, 발레리는 이미 성적 모험에 시동을 걸었구나.

유미는 미셸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레스토랑에서 포도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자

 

긴장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셸은 점점 호감형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유미가 석사과정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하니 자기가 학위를 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잘 알아듣질 못해서 그렇지 그는 제법 박식하고 지적인 청년 같았다.

미셸이 젊은이들이 밤마다 모이는 클럽에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 속에서 발레리가 에르베와 함께 몸을 밀착한 채 다정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미도 미셸과 칵테일 잔을 들고 적당히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몇몇 남자들이 미셸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이 아가씨와 춤을 추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했다.

 

미셸이 주인처럼 거만하게 물었다.

“이 남자가 당신과 잠깐 춤을 추고 싶다는데….”

유미는 모두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남자들이 아쉬운 눈빛으로 물러났다.

 

발레리가 어느새 유미의 곁으로 왔다.

“유미, 인기 짱이네. 내 그럴 줄 알았어.

 

 이 자식들 동양 여자라면 눈이 휙 돌아가지고선.

 

특히나 여기 오는 놈들은 말이야.

 

내가 그래서 너랑 붙어있는 게 짜증 나.

 

그런데 넌 저 허여멀건 애를 찜한 거니?”

발레리가 미셸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냥….” 

 

“잘해봐. 근데 에르베, 저 남자 끝내준다.

 

난 인종주의자는 아니지만, 역시 흑인 남자야. 대물이야. ㅋㅋㅋ….”

이 사람들도 대물은 엄청 밝히나 보다.

 

유미는 갑자기 그 일이 떠올랐다.

 

유미가 프랑스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에 유미에게 저녁이면 전화가 걸려 왔었다.

 

예절 바른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마드모아젤. 저는 무슈 그로스바뜨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그로스바뜨 씨.”

“저는 이웃에 살고 있어요. 이름이 어떻게 되지요?”

유미는 불어연습도 할 겸 간단하게 통화를 하는 건 어떠랴 싶었다.

 

남자와 초보 불어로 더듬거리며 몇 마디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남자는 한두 번 더 전화를 해오곤 했는데, 어느 날은 좀 이상했다.

“안녕하세요? 무슈 그로스바뜨예요.”

“아, 안녕하세요? 무슈 그로스바뜨! 잘 지내세요?”

“잘 못지내요. 마드모아젤! 저의 그로스바뜨를 한번 보고 싶지 않으세요?”

저의 그로스바뜨? 그로스바뜨가 성이 아니었나?

“그로스바뜨요…?”

“그래요… 아아, 한 번 보여주고 싶어요.”

“그게… 뭔데요?”

“보시면 당신이 아주 좋아할 겁니다.”

그리고 남자가 호흡이 야릇해지며 신음을 흘렸다.

 

그제야 유미가 놀라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발레리에게 이야기하니 발레리가 마구 웃었다.

 

말하자면 유미가 어떤 변태의 장난전화에 놀아난 것이었다.

 

그로스바뜨(grosse batte)란 그야말로 빅배트(big bat) 즉 ‘대물’이란 뜻의 은어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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