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 키다리 오빠-9
“진짜 돌겠네. 그런 데를 왜 가겠다는 거야?
전에 TV 보니까 나오던데 남녀가 모두 알몸으로 테니스도 치고 승마도 하고 춤도 추는데
모두 몸에 달린 것들이 방울처럼 흔들리고… 못 봐 주겠더구먼.”
“방울처럼…? ㅋㅋㅋ 오빠도 그런 식으로 말할 줄 아네.”
유진의 묘사대로 그 우스운 모습이 눈에 보이듯 그려졌다.
“난 너무 재미있을 거 같아.”
유진이 짜증을 냈다.
“안 돼.”
“왜요?”
“무조건.”
“오빠, 오빠는 예술가 아냐? 왜 그렇게 고리타분해?
문명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생긴 그대로 자유롭게 지내는 게 어때서?”
“그게 짐승이지 사람이야?”
“그렇게 짐승처럼 지내다 보면 인간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거 같아.”
“인간? 그나마 짐승과 다른 것은 인간이 옷을 입는다는 건데.
인간이 부끄러움을 안다는 건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인간은 추악한 욕망 덩어리일 뿐이야.”
“욕망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게 뭐 어때서요?
그게 더 순수한 거 아니에요? 오빠처럼 위선적인 거보다는?”
“그렇게 순수해서 너는 아무데서나 그렇게 훌렁훌렁 벗니?
인간 근본이 바뀌는 게 쉬운 건 아닌 건 알지만….”
갑자기 머리에서 열이 솟구쳤다.
“이제야 본성이 나오네.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얼마나 근질근질했을까.
그래요. 나 창녀 같은 여자예요.
나더러 새 인생을 살라며 부추긴 건 누군데요?
이제 보니 그런 거 정말 다 위선이었어.
내가 창녀 같은 여자라 가까이 하기도 싫었던 거지?
이제부터 나한테 아는 척하지 말아요.
나는 나대로 살아갈 테니까. 내 인생이야. 세라비! 아니지, 세마비!”
유미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유진이 두 번인가 더 전화를 했지만 전화는 자동응답기로 돌아가고 있었고,
유진은 아무 말도 않다가 전화를 끊고 말았다.
좀 전에 유진이 한 말이 유미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인간 근본이 바뀌는 게 쉬운 건 아닌 건 알지만….
그래, 난 근본이 없는 인간이야.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인간이야.
근본을 모르는 인간에게는 그 말이 얼마나 독이 되는지 너는 아니?
유미는 위악적인 심정이 되어 한껏 불행감에 빠졌다.
그런 위악적인 감정은 퇴폐적인 감정과 사촌 지간이다.
그래, 나체 캠프에 가서 인간의 근본이 짐승과 같다는 걸 철저히 깨우칠 거야.
끝까지, 인간 욕망의 밑바닥까지 가 볼 거야.
이유진에게 상처 입은 유미는 타락의 끝까지 가 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며칠 후 유미는 발레리를 따라서 지중해 연안의 나체주의자들의 캠핑센터로 바캉스를 떠났다.
아마도 프랑스에는 그런 곳이 여러 군데 있나 본데,
발레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참여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대형마트에 가서 2인용 텐트를 사서 발레리의 자동차에 싣고 파리를 떠났다.
“아그드 곶 같은 데가 유명하고 시설도 잘돼 있고 하지만,
너무 현대적인 시설이라 좀 그렇잖아. 자연으로 돌아가려면 흙하고 가까워야 해.
캠핑 트레일러나 방갈로도 빌릴 수 있지만 우린 텐트 치고 지내자고.
그냥 자연을 느끼자고.”
발레리가 운전을 하면서 흥분해서 말했다.
“꼭 벗어야 돼? 나 좀 무서워.”
유미가 조심스레 말했다.
“옷 입은 사람을 쫓아내진 않을 거야.
그건 너의 자유야. 나체주의자들은 무척 예절 바르다고 소문나 있어.
절대 성추행범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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