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 키다리 오빠-11
남자들도 아무렇지 않게 그 모습을 보더니
그럼 먼저 수영장에 가 있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넌 안 벗니? 더운데 샤워하러 가자.”
“좀 부끄럽다. 동양여자는 나밖에 없는 거 같은데…다들 나만 쳐다보면 어쩌지?”
발레리가 웃었다.
“너가 옷을 꽁꽁 입고 있으면 너만 쳐다볼 걸?
그런 선입견이나 생각을 옷과 함께 날려버리려고 온 거 아니니?”
유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라, 모르겠다.
장님 나라에는 눈 뜬 인간이 비정상이다.
유미도 셔츠를 벗고 청바지를 벗었다.
알몸인 발레리가 샴푸를 챙겨 먼저 샤워장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유미는 브래지어와 팬티를 벗고 샤워장까지 캠핑장을 횡단하는 게 꺼려졌다.
망설이다 브래지어만 벗고 팬티는 입은 채로 앞서 가는 발레리를 뒤쫓아 샤워장으로 향했다.
샤워장 근처에는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가 보였다.
수영장에서 벗고 있는 사람은 그렇다 치고 테니스 코트에서 라켓만 들고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사람은 좀 낯설었다.
가는 길 군데군데 설치된 쓰레기통에는 쓰다 버린 콘돔들이 눈에 띄었다.
샤워장은 놀랍게도 남녀공용이었다.
바로 옆 샤워기에서 남자가 거품을 잔뜩 내어 온몸을 문지르다가
자신의 물건을 꼼꼼하게 씻고 있었다.
여자들도 아무렇지 않게 젖가슴에 거품을 내어 문지르고 있었다.
모두 각자의 몸을 씻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서로를 탐색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유미와 발레리가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 두 사람에게 꽂혔다.
쭈뼛거리던 유미는 눈을 질끈 감고 팬티마저 벗고 샤워기 아래에 섰다.
사람들이 무심한 척 자신을 보는 걸 느낀 유미는 모른 척 열심히 몸을 씻었다.
샤워장 안에 있는 대여섯명의 사람들 중에 특히 몸매가 멋진 사람들은 없었다.
30대 이상이거나 중년인 남녀들 사이로 젊고 건장한 흑인 혼혈 남자 두 사람이 들어왔다.
두 남자가 들어오자 나머지 사람들은 엑스트라로 보일 지경이었다.
발레리가 팔꿈치로 유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쟤네들 정말 잘 생겼네. 난 찜했다.”
발레리가 그들에게 가더니 비누를 좀 빌려주면 안되겠느냐고 애교를 떨며 물었다.
그들은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들이 발레리와 일행인 유미를 자꾸 유심히 보았다.
그러더니 두 남자가 두 여자에게 다가왔다.
역시 흑인들의 물건에 대한 소문은 맞는 거 같았다.
백인들 게 ‘가래떡 토막’이라면 흑인들 것은 흑단으로 만든 ‘곤봉’처럼 보였다.
유미는 그 모습에 압도되어 경직된 모습으로 어색하게 몸을 사리고 있었다.
“안녕, 난 시몽이에요.”
“안녕, 난 에르베입니다.”
두 남자가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안녕? 난 발레리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난 유미….”
샤워 후에 발레리와 유미는 그렇게 통성명을 하게 된 남자들의 방갈로에 초대되었다.
방갈로 안은 작은 부엌을 사이에 두고 작은 침실이 두 개 있었다.
그중에 키가 좀 더 큰 남자가 에르베였다.
직장 동료라고 했는데, 에르베가 나이도 더 많은 듯했다.
에르베가 차가운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방금 도착했다니 환영합니다. 우린 여기 벌써 일주일 됐어요.”
시몽이 물었다.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실지 정했어요? 이왕이면 우리와 함께 하는 것도 좋을 텐데….”
그러며 프로그램 브로셔를 꺼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나체주의의 취지에 대해 토론하는지 유미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옷이 벗겨진 마네킹처럼 자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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