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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키다리 오빠-8

오늘의 쉼터 2015. 4. 8. 17:03

(387) 키다리 오빠-8

 

 

 

인간의 언어는 오히려 진실을 곡해하고 은폐할 때 쓰인다.

 

오히려 몸이 표현하는 원초적 소통이 훨씬 건강하고 자연스럽다는 걸 발레리는 알게 해주었다.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녀가 유미에게 ‘나튀리스트(Naturiste) 캠프’에 함께 참여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왔다.

 

그곳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남불의 어느 마을에 있다고 했다.

‘나튀리스트’라? ‘자연주의자’란 뜻인가?

 

하긴 루소가 그랬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바닷가가 고향인 유미는 지중해로 간다는

 

발레리의 말에 찬성을 했다. 하지만 발레리의 설명을 차근차근 들으니

 

‘나튀리스트’는 ‘누디스트’ 즉 나체주의자들을 일컫는 단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유럽의 해변에는 더러 나체촌이 꽤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발레리는 말했다.

“예전부터 벼르던 일이었어. 미셸 우엘벡의 소설에 나오는 걸 보고 꼭 가보고 싶었어.

 

이젠 뭐 그리 새로울 것도 없지만, 어쨌든 내게는 흥미로운 모험이거든.

 

유미,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어. 방갈로나 빌라를 빌릴 수도 있고 텐트를 가져갈 수도 있어.

 

자유 해변에 자쿠지에 수영장도 있고 스포츠 시설과 나이트 클럽,

 

카페와 레스토랑같은 위락 시설도 잘 돼 있어. 가족들도 오긴 하지만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은 좀 이색적인 만남을 기대할 수 있잖아.

 

무엇보다 실오라기 한 올도 나를 구속하지 않는,

 

태어날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자연에 스며들어 지내는 게 멋지지 않니?”

“그러니까… 낯선 사람들과 발가벗고 지낸다구?”

“응. 거기선 남녀노소 누구나 평화롭고 자유롭게 지낸대.

 

물론 옷을 입는 걸 뭐라 그러진 않지만,

 

장님 나라에선 눈 뜬 사람이 이상하듯 알몸으로 지내는 게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대.

 

경비는 내가 댈 테니까 함께 가자, 유미. 우리 색다른 바캉스를 즐겨보자.” 

 

경비까지 대겠다는 발레리의 청을 쉽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색다른 경험에 대한 누를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좋아.”

“그럼, 등록한다. 괜찮지? 1주일 정도?”

“그래.”

유미는 발레리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런데 다음날 이유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웬일이에요? 생전 전화 안 하는 사람이?”

유미는 오랜만에 걸려온 유진의 전화가 반가웠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잘 지내지? 더운데 어디 휴가도 못 가고 고생이 많겠네.”

“네, 뭐 그럭저럭….”

“미안한데 부탁이 하나 있어서.

 

내가 얼마 전에 한국 들어가는 친구가 남기고 간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어.

 

그런데 내가 촬영차 어디 여행 가느라 집을 좀 비우게 생겼어.

 

한 열흘 정도 강아지를 좀 맡아주면 좋을 거 같아서 말이지.”

“어쩌죠? 나도 바캉스 떠나는데.”

“그래? 어디? 혼자?”

“발레리하고요.”

“아 그 발레리….”

언젠가 유진이 발레리하고 놀지 말라는 투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어디 가는데?”

“음, 나체주의자들의 캠프가 지중해 어디에 있대요.”

“뭐 나체주의자? 미쳤어?”

“안 미쳤어요. 나 자연으로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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