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 키다리 오빠-5
“그런데 그 누군가를 떠올렸지만 마음 내키는 사람이 없었어요.
혼자 영화를 보고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샴페인으로 자축하며 술을 마셨어요.
기분이 좋아졌어요.
밤의 파리 시내를 싸돌아다니는데 집시 여인이 거리에서 꽃을 팔고 있었어요.
난 꽃을 사고 싶었어요.
보름달이 푸른 하늘로 얼굴을 내민 내 생일날 저녁이 저물어가고 있었어요.
얼마 전에 죽은 엄마가 그랬었죠. 보름날 밤에 너를 낳았는데,
달을 보며 많이 울었다고… 난 갑자기 누군가에게 이 꽃다발로 축하를 받고 싶었어요.
그때 왜 당신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몰라요. 바보같이….”
유미는 꽃다발을 놓고 창가로 갔다. 하늘이 환해지며 새날이 밝아왔다.
“뭐 보름날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박복하고 팔자도 세대요.
이미 다 지난 일이거든요. 나도 참 유치하지.”
유미가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는데 유진이 다가왔다.
“옆구리 찔린 거 같지만, 뒤늦게라도 생일 축하해요.
유미씨는 이 세상에 태어나 축복 받을 자격 있어요.
축하해요.”
유진이 유미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유미가 꽃다발을 품에 안았다.
“나 참 유치하죠?”
유진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요.”
“나 안아줘요.”
“……?”
유진의 눈이 둥그레졌다.
“그냥 여동생처럼… 그래도 행복할 거 같아요.
아니 그게 더 좋아요. 오빠처럼, 아빠처럼 그냥 안아주면 돼요.”
유진이 꽃을 든 유미를 품안에 안고 유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둘 사이에 낀 장미꽃의 가시가 따끔거렸다.
“나 학교 갔다 올 때까지 기다려요.
늦었지만 오늘 축하하지 뭐. 가면 안돼요.”
유진이 유미의 두 팔을 잡고 당부했다.
유미는 그러는 유진이 고마웠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으라고 준비를 해주더니
급하게 짐을 챙겨 아파트를 나갔다.
베란다 창으로 유진이 거리로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옷걸이에 걸린 푸른 원피스를 보았다.
유미의 여름 원피스가 여름 아침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아직 마르지 않았다.
유미가 잠든 사이에 개똥이 묻은 유미의 원피스를 손으로 빨아주는 유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정다감한 사람. 그래, 오빠면 뭐 어때? 저런 오빠라도 혈육이, 가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미는 유진의 커다란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며
이런 남녀관계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까 유진의 사진 작품에 찍힌 누드모델에겐 왠지 질투가 났다.
정말 유진의 애인일까?
그는 왜 묻는 질문에 대답도 못하는 걸까?
그날 유진이 집에 돌아왔을 때 유진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케이크는 이따 먹기로 하고 선물이 있어요.”
“선물요?”
유진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생일날 이걸 선물할 수 있어서 좋다!”
유진이 봉투를 꺼냈다.
“축의금? 키다리 아저씨한테서 뭐 돈이라도 왔어요?”
그 말에 유진은 정색을 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처음 이후로 돈 안 보냈어요.
내가 중간에 떼어먹는 거 아니에요. 오해 없길.”
“아이, 농담이에요, 키다리 오빠. 그럼 뭐지?”
유미가 유진을 ‘키다리 오빠’라 부르며 심각해진 분위기를 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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