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 키다리 오빠-4
자다가 갈증이 너무 심하게 느껴져 유미는 눈을 떴다.
날이 밝아오는 시각이었다.
유진이 옷을 입은 채로 유미의 옆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카페트 바닥에 신발을 신고 사는 이곳의 아파트 바닥에서 잠을 잘 수는 없었을 것이다.
등을 돌리고 몸을 접고 누운 키 큰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유미는
자신의 이불을 덮어주며 일어났다.
냉장고로 가서 물을 꺼내 마시다가 유미는 탁자 위에 놓인 유진이 현상한 흑백사진을 발견했다.
여자의 누드사진이었다.
한 여자를 모델로 한 사진들이었다.
여자의 얼굴은 어둠 속에 잠겨 교묘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꽤 에로틱한 포즈로 찍혀 있었다.
그래서 동양여자인지 서양여자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키가 크고 날씬하며 풍만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몸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유미는 그 사진을 들여다보다 조용히 내려놓았다.
한지에 먹물이 스며들듯 쓸쓸한 질투가 마음으로 번졌다.
어쩌면 이 모델이 유진의 애인인 걸까?
유명한 세기의 화가들은 늘 자신의 모델들과 염문을 뿌린다.
이유진이 유미에게 관심이 없었던 건, 그게 이유였던 걸까?
그래서 한 침대에 잠들었으면서도 옷깃조차 스치지 않겠다는 폼으로
등을 돌리고 잠을 자는 걸까?
유미는 순간 여자로서 처음 느껴보는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꼈다.
그것도 모르고 아끼는 하늘색 원피스를 차려입고 꽃다발을 들고 이벤트를 꿈꾸었다니.
유미는 탁자 위에 널브러진 꽃다발을 바라보다 그것을 손에 들었다.
좀 흐트러졌지만 다행히 개똥이 묻지는 않았다.
유미는 꽃다발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때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유진이 눈을 번쩍 떴다.
“어, 일어났어요?”
잠이 덜 깬 얼굴로 유진이 묻고 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좀 일찍 학교로 나가봐야 하는데. 유미씨는 좀 더 자요.
옷도 아직 안 말라서 나가지도 못할 텐데….”
“아, 내 원피스!”
어제 겨우 몸만 씻고 욕실을 나와 잠에 곯아떨어져
원피스를 빨아 널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다.
“내가 손빨래해서 베란다에 널어놨어요.”
유진이 탁자 앞에 서 있는 유미와 탁자 위의 흩어진 사진들을 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머쓱한 얼굴로 일어서서 탁자로 가서 사진을 얼른 정리했다.
“애인인가 봐요?”
유진이 그 물음에는 대답을 않고 엉뚱한 말을 했다.
“어, 너무 피곤해서 꽃은 못 꽂았어요.
꽃병도 없어서… 물주전자에라도 꽂을까?
그냥 와도 되는데 꽃은 왜 사왔어요?”
유미는 대답은 않고 사이를 두고 물었다.
“제가 여자로, 꽃으로 안 보이시죠?”
“…….”
“하긴 그게 유진씨의 매력인지도 모르죠.”
“그 꽃 이리 줘요.”
유진이 손을 내밀었다.
“이거 유진씨 주려고 갖고 온 거 아니에요.”
“그래요?”
“이미 지났지만, 나를 위한 꽃다발이었어요.”
“……?”
“으음… 어제가 내 생일이었었거든요.”
유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유진이 유미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생일날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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