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81) 키다리 오빠-2

오늘의 쉼터 2015. 4. 8. 16:51

(381) 키다리 오빠-2 

 

 

 

“봉수아, 무슈! 세 유미!”

유미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유미씨? 지금 어디?”

“나 지금 북역 근처인데… 지하철도 끊기고, 버스도 안 오고,

 

택시는 없고, 술은 취하고, 잠은 쏟아지고….”

“도대체 지금 이 시간에 그 위험한 북역 근처엔 왜 있는 거야? 혼자야?”

유진이 발끈 화를 냈다.

 

평소엔 애써 존댓말을 쓰다가도 화가 나면 반말이 나오는 유진의 말투가 우스웠다.

 

프랑스 사람들도 영화를 보면 남녀가 존칭을 쓰다가도 함께 잠을 자고 나면

 

자동적으로 반말을 하는 게 신기했던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반말이 나오는 유진과는 잠을 잔 적이 없다.

 

그냥 화가 나면 반말이 튀어나온다.

 

프랑스 사람들은 극도로 화가 났을 때도 존댓말을 쓰는 경우엔 꼭 존댓말을 쓴다.

 

불어를 배우다 보니 반말이란 게 친밀감의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대비가 갑자기 우스웠기 때문이다.

“으음… 그러게… ㅋㅋ.”

“웃음이 나오나?”

“그런데 왜 그렇게 화를 내요?”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

“치이, 언제부터 내 걱정을 했다구.”

“그쪽은 밤이면 위험지역이라고 얘기했을 텐데.

 

왜 그렇게 그런 데를 싸돌아 다녀요? 기다려요.”

갑자기 유진의 말투가 걱정스럽게 변했다.

“올 거예요?”

유미가 쌩긋 웃었다.

“있는 곳을 말해요. 거리에 있지 말고 불 켜진 카페나 바에라도 들어가 있어요.

 

차 타고 근처에 가서 전화할게요.”

으음… 존댓말로 바뀐 걸 보니 걱정은 좀 되나 보군.

 

유미는 그의 아파트 창을 올려다보며 혀를 쏙 내밀었다.

 

거짓말한 게 탄로 나도 어쩔 수 없다.

 

잠시 후 그가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와 차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유진의 자동차는 그의 집 앞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다.

 

유미는 유진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 사실 술 한잔 마시고 요기 유진씨 집 앞에 와 있어요.

 

유진씨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유진이 고개를 들어 거리를 살폈다.

 

유미가 길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었다.

 

유진의 당황한 기색이 안 봐도 뻔히 보였다.

 

그가 잠시 기가 막힌 듯 서 있다가 유미가 있는 길 건너편으로 걸어왔다.

유미가 무대 위의 발레리나처럼 양팔을 벌리고 왼쪽 다리를 뒤로 빼며 인사하다가 휘청거렸다.

 

유미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나 술 취한 발레리나야.”

술 취한 유미가 헤실헤실 웃는 꼴을 유진은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난 오늘 작업해야 해요. 돌아가요.”

“이 시간에? 지하철도 끊겼는데 나 이렇게 취해서 못가요.”

마지못해 유진이 말했다.

“내 참! 알았어요. 태워다 줄게요.”

유진이 반기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유미는 자존심이 상했다.

“치! 인상 쓰지 말아요. 그런 얼굴로 태워주는 거 싫어요. 내가 알아서 갈게요.”

갑자기 심통이 난 유미가 돌아서서 무조건 유진과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거리에 인적도 없고 이상하게 하늘이 짙푸른 여름밤이었다.

 

걸어서라도 집으로 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눈을 크게 뜨고 앞으로만 걸어가면 어디든 갈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휘청,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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