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 키다리 오빠-3
어느 순간, 유미는 발이 미끄러져 보도 위로 자신이 넘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유미는 에라, 모르겠다!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깊은 바다처럼 짙푸른 하늘이 보였다.
노란 보름달 하나가 구름 사이로 빠르게 몸을 감췄다.
유진이 뛰어왔다.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그런데 유미를 부축하려던 유진이 한 발 물러섰다.
“어휴! 이게 뭐야? 내 참!”
“어머! 내 꽃!”
유미는 흐트러진 꽃다발을 챙겼다.
유미는 겨우 일어서서 우아하게 꽃을 코로 가져가 향기를 맡았다.
유진이 투덜거렸다.
“정말 많이 취했군. 냄새 안 나요? 개똥에 미끄러져서 옷도 다리도 똥투성인데.”
“개똥?”
그럼 아까 발밑에 물큰 밟힌 게 개똥이었나?
어휴, 쪽 팔려. 그러고 보니 유미의 하늘색 여름 원피스 치마 밑자락과 종아리에
개똥이 묻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거기다 개발에 편자지, 그것도 모르고 개똥 범벅이 되어 꽃다발을 들고
꽃향기를 맡고 서 있는 자신의 모습에 유미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미는 허리를 굽혀가며 깔깔대고 웃었다.
유진이 차에서 티슈를 꺼내 와서 유미를 닦아주었다.
“안 되겠어요. 집으로 들어가서 일단 좀 씻어요. 내 차에 똥 묻히긴 싫으니까.”
“갈래요!”
“똥고집 부릴래요?”
유진이 눈알을 부라렸다.
“똥고집?”
“그래요, 똥고집. 정말 철없는 여동생도 이러진 않을 거야.”
“흥, 뭐야? 자기가 뭐 오빠나 되는 거처럼.”
그렇게 비아냥거리며 뱉은 말이 갑자기 가슴을 툭 쳤다.
유진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그래요. 오빠 집에서 씻고 간다고 생각하고 들어가요.”
오빠…. 유미는 할 수 없이 유진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따라 들어갔다.
유진의 아파트엔 처음이었다.
유진의 아파트는 침대가 놓인 거실에 암실로 꾸며놓은 작업 방이 있는 작지 않은 공간이었다.
“어휴! 일단 냄새나니까 욕실에 가서 먼저 씻고 이걸로 갈아입어요.”
유진은 자신의 티셔츠와 반바지를 꺼내어 유미에게 건네고 유미를 욕실에 밀어넣었다.
아직도 취기에 젖은 몸이 얼얼한 가운데 유미는 일단 샤워기 밑에서 몸을 씻었다.
공연히 화가 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이유진의 집에서 이런 이유로 옷을 벗고 샤워를 하게 되다니.
샤워를 하고 타월로 몸을 닦고 나와 유미는 유진이 주고 간 남자용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었다.
티셔츠는 헐렁하고 반바지는 커서 골반에서 흘러내릴 듯했다.
욕실을 나오자 이유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암실에 들어가 있나? 대신 침대 위에 종이가 보였다.
종이 위에는 유진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너무 취한 거 같으니 침대에서 자도록 해요.
난 암실에서 밤새 작업해야 하니 신경 쓰지 말고.’
쪽지를 읽다가 취기와 졸음 때문에 눈이 감겨왔다.
유미는 유진의 침대 안으로 시트를 열고 몸을 집어넣었다.
눅눅한 이불에서 오랜만에 맡아보는 남자의 체취가 훅 풍겨 나왔다.
정갈하고 뽀송한 호텔의 시트가 아닌,
남자의 방에서 맡는 이런 생활의 냄새가 한편으로 유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했다.
유미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꽃다발을 쓸쓸한 마음으로 바라보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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