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77)생은 다른 곳에-13

오늘의 쉼터 2015. 4. 7. 17:52

(377)생은 다른 곳에-13

 

 

 

“출장 가면 저를 좀 도와주셔야죠. 사실 표현은 안 했지만 쌤 믿고 가는 거거든요.”

“그 계획서 내게 보내 봐.”

“안 그래도 그러려고 해요. 지금은 근무 시간이라 그렇고요. 제가 다시 전화할게요.”

유미는 한 손으로 휴대폰을 쥐고 한 손으로는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용준. 보고 싶다.”

“정말요?”

“그럼.”

“쌤을 파리에서 만날 생각하니 꿈 같아요.

 

중딩 시절 이후로 안 했던 몽정을 다 했다니까요. 요즘 저도 외롭거든요.”

‘나도 그래’라는 말이 나올 뻔하다가 유미가 도로 삼켰다.

 

용준과 통화를 끝내고 유미는 잠시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유미는 수건으로 머리칼의 물기를 닦다가 다시 옷을 입었다.

 

거울을 보니 화장기 없는 얼굴을 살짝 가린 물기 머금은 긴 머리가 촉촉하고 섹시해 보였다.

 

유미는 아까 알몸으로 부딪쳤던 다니엘의 민망해하던 얼굴을 떠올렸다.

 

아래층에서 구수한 모닝커피의 냄새가 올라왔다.

 

유미는 맹렬한 식욕을 느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다니엘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래층에서 유미를 맞이했다.

 

잠깐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유미가 눈을 내리깔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다니엘이 그 미소를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봉주르’ 하고 속삭이듯 인사했다.

 

그가 안내한 식당으로 들어서니 이미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프랑스의 아침 식사는 ‘프티 데주네’라고 해서 아주 간단하다.

 

부잣집이라고 해서 아침부터 거하게 먹는 건 아닌가 보다.

 

대신에 커피 주전자나 커피 잔 세트가 무척 고급스럽고 화려한 리모주 도자기 세트였다.

 

하녀 같은 여자가 갓 구운 빵을 내왔다. 

 

“아, 안느. 이분이 앞으로 위층을 쓰시게 될 거야. 내가 부를 때까지 들어가 있어요.”

안느라 불린 중년의 여자는 짧게 유미를 일별하고는 ‘봉주르’ 하며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식당에서 나갔다. 다니엘이 손수 커피를 따라 주었다.

“잘 잤어요?”

“예. 실례를 끼쳐서 미안합니다. 이런 꼴을 보여 드려서….”

유미가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이런 꼴이라뇨. 아까는 제가 실례했어요.”

갑자기 아까의 장면을 떠올리는지 다니엘의 귓불이 붉어졌다.

“괜찮아요. 욕실 문을 닫지 않은 제가 잘못이죠.”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유미는 그 말에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동양 여인의 아름다움에 제가 조금씩 눈떠 가는 거 같습니다.”

“동양 여자를 만나신 적이 없으세요?”

“물론 일로 만난 적은 있지요. 그런 의미로 물은 건 아닌 거 같은데….”

유미는 조용히 수줍은 미소를 짓다가 물었다.

“뭐 동양 여인의 아름다움이란 게 다른 건가요? 아름다움이란 보편적인 거 아닌가요?”

“지금 짓고 있는 미소 같은 겁니다.

 

동양의 미소는 왠지 은은한 향기가 느껴지는 거 같아요.

 

사실 지난번에 남자 셋과 만났을 때 유미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웃고 있었지요.

 

난 그 고요함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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