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생은 다른 곳에-12
아래층은 아직 조용했다.
아래층은 훨씬 호화롭고 넓었다.
유미는 얼른 한 번 휘둘러 본 다음에 다시 위층으로 올라와 방으로 들어왔다.
창문을 열었다.
5층 정도에 위치한 방인 거 같다.
바로 창 앞으로는 키가 큰 나무들이 서 있었고 공원이 내려다보였다.
유미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침대로 들어가 다시 누웠다.
어제 마신 술이 좋았는지 속은 멀쩡했지만 좀 피곤했다.
이대로 나가서 집으로 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모른 척 다니엘이 깨울 때까지 잠들어 있어야 하는 걸까?
그러나 새들의 지저귐 때문에 다시 잠들 거 같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방 안쪽 문을 열어보니 월풀 욕조가 있는 욕실이 나왔다.
유미는 피로도 풀 겸 아예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누웠다.
월풀 욕조에서 홀로 스파를 즐기다 보니 옛 남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얼굴이, 나신이 환영처럼 떠오르다 사라졌다.
유미가 떠난 후 유미를 찾아왔다는 고수익도, 박용준도 곧 결혼을 앞둔 윤동진의 나신도
손에 잡힐 듯하건만, 이곳은 서울과는 지구 반 바퀴나 떨어져 있다.
유미는 요즘 들어 휴화산처럼 잠잠한 자신의 벗은 몸을 내려다보았다.
두 개의 봉분 사이로 평평한 평야가 이어지다 검은 숲의 구릉이 보였다.
유미는 그곳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깊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온몸을 두들기는 물살의 자극이 좋아 유미는 그대로 몸을 맡긴 채 한참을 욕조에 누워 있었다.
욕조에서 나온 유미가 거울 앞에 섰다.
욕실의 한쪽 벽 전체가 간접조명을 받는 거울이라
유미의 몸은 조각처럼 음영이 깊고도 돌올해 보였다.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유미가 미처 대답을 못한 사이에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온 거 같았다.
열어놓은 욕실의 전면 거울로 다니엘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거울 앞에 나신으로 서 있는 유미의 뒷모습을 본 다니엘이 주춤, 그 자리에 섰다.
“오, 이런 실례! 아까 일어난 거 같은 소리가 들려서….”
다니엘의 당황한 모습이 거울로 보였다. 유미는 얼른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준비되면 아래층으로 내려오세요. 아침식사 합시다.”
다니엘이 말하며 후다닥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머쓱해진 유미도 목욕 타월을 두르고 방으로 들어왔다.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보니 어제 늦은 밤 시각에 박용준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유미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전화를 걸었다.
“나야, 전화했었네.”
“아! 쌤!”
“전화 괜찮아?”
“아 지금 점심 막 끝내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중이에요.”
“무슨 일로 전화했었어?”
“빅 뉴스입니다. 제가 조만간 해외 출장을 가게 됩니다.”
“그래?”
“미술시장 동향을 답사하고 작품 물색하는 차원이죠 뭐.
프랑스로 가는데 뭐 영국이나 독일을 포함시켜도 되고요.”
“내가 여기 있다는 얘기는 아무한테도 안 했겠지?”
“당근이죠. 제가 강애리에게 아주 신임을 받고 있거든요.
전에 얘기했죠? YB에서 미술품을 대거 구입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그래, 얼마 전에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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