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생은 다른 곳에-7
엄마는 처녀 때 노래를 잘해서 대학의 성악과를 가보는 게 꿈이었다.
유미는 엄마의 그 말을 듣자 코끝이 찡했다.
그런데 그만 유미를 갖게 되면서 인생이 꼬였다고 했다.
엄마는 딸의 대학입학에 자신의 못 다한 꿈을 보상받고 싶은 거라고 유미는 생각했다.
그러나 입학식 당일엔 이상하게 늦잠을 자버려 학교 앞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서
입학식이 열리는 대강당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가야 했다.
지각이었다.
캠퍼스로 들어서자 차량들과 사람들로 제법 복잡해 보였다.
캠퍼스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유미는 우왕좌왕하며 대강당의 출입문을 찾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꽃을 든 팔꿈치에 타격이 왔다.
검은색 대형 세단이 급히 주차를 하느라 그랬는지 유미를 채 보지 못하고 후진하다
유미를 친 거였다.
유미는 오른손에 든 꽃을 놓치고 땅바닥으로 넘어졌다.
다행히 유미는 차를 피했지만 꽃다발은 뒷바퀴에 뭉개졌다.
운전자가 급히 내리고 유미 또한 땅바닥에서 일어났다.
무릎과 팔이 얼얼했지만 다행히 경미한 타박상 같았다.
다만 망가진 꽃다발이 속상해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젊은 운전자가 괜찮냐고 물어왔다.
유미는 망가진 꽃다발을 집어들고 운전자를 원망스레 바라보았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그때 차에서 한 신사가 내렸다.
그 신사는 뭐라고 말하며 다가오다가 유미의 눈물을 보고 주춤했다.
“많이 다쳤나 보네. 많이 아픈가 봐. 미안해요. 이를 어쩌나….”
“난 괜찮아요. 그런데 이 꽃이….”
“김 기사, 이 학생 병원에 좀 데려가지.”
신사가 젊은 운전자를 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입학식 참석해야 해요.
사진을 찍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꽃이 망가져서….”
유미의 두 눈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그러자 신사가 차의 뒷문을 열고 꽃다발을 꺼냈다.
“자아, 망가진 꽃 대신 이 꽃다발을 받아요.
우리 딸 주려고 했는데 학생 꽃다발을 망가뜨렸으니 받도록 해요.”
신사가 내미는 꽃다발은 훨씬 더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유미는 선뜻 받지 못하고 망설였다.
“의원님, 팔 아프시겠어요. 얼른 받아요.”
기사가 옆에서 채근했다. 유미는 엄마의 당부가 생각나서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학생은 어느 대학 무슨 과야? 이름은 뭐고?”
신사가 부드럽게 물었다.
“미대 서양화과의 오유미라고 합니다.”
“으음, 그래. 김 기사, 이 학생 나중에 병원에 데려가고 연락처 받아놓도록.
학생, 정말 미안하네. 이것도 사고는 사고니까 내가 책임지겠네.
그리고 입학 축하해요.”
신사는 기사에게 처리를 부탁하고 입학식이 열리는 대강당으로 들어갔다.
유미는 주소와 전화번호를 묻는 기사에게 급히 말해주고는 식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입학식이 끝나고 유미는 신사가 준 꽃다발을 안고 캠퍼스 안의 사진사에게 즉석 사진을 찍었다.
팔이 무지근했으나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었다는 데 안심을 했다.
원래 꽃다발의 주인이 되었을 신사의 딸에게는 좀 미안했다.
김 기사라는 운전기사가 유미의 자취방을 찾아온 것은 입학식이 사흘이나 지났을 때였다.
괜찮을 거 같던 팔이 붓고 무지근하게 아파올 무렵이었다.
수업시간에 연필을 쥐고 글씨를 쓰는 게 힘들었다.
돈이 많이 들까 싶어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때서야 그쪽의 연락처를 알아두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그때만 해도 세상 물정 모르고 어수룩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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