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생은 다른 곳에-6
“그래. 이혼서류 제출했어. 이혼하게 될 거야.”
아, 결국 그렇게 됐구나.
“그리고 새 사람이 나타났어. 있잖아, 그 사람….”
지완은 유미에게 새로운 애인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으나 유미는 인규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럼 인규씨는?”
“나도 잘 모르겠어. 알고 싶지도 않고. 그쪽에서는 시아버지와 변호사가 알아서 다하거든.
왠지 쉬쉬하는 분위기야.”
“전화도 서로 안 해 봤니?”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어.”
“애도 참. 너 보기보다 좀 잔인, 아니 냉정하다.
그럼 인규씨와 직접 통화나 만날 일은 없는 거니?”
지완의 목소리가 좀 딱딱해졌다.
“아마도. 왜?”
“아니, 혹시 뭐 일관계로 연락할 일이 있을까 해서….”
“일은 무슨 일. 그 사람 이제 끝난 거 같아.
너도 미친 사람 취급해 놓고서는. 아마도 병원에 있지 않겠냐?”
“하지만 좀 안됐다….”
“너 언제부터 그렇게 동정심이 많았니.
한동안 자기가 살인도 저지른 놈이라며 제 손에 잡히면 애들이고
나도 다 죽여 버린다고 설쳐댄 인간을 내가 어떻게 동정을 하니.
너는 그 꼴을 안 당해 봐서 그래. 난 빨리 벗어나고 싶어.
나도 한때 그 사람 사랑하고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왜 가슴이 아프지 않겠니.
그리고 애들 아버진데….”
지완의 목소리가 축축해졌다.
“그래. 잘했어.”
“난들 온전한 줄 아니? 나도 계속 불면증이야.
지금 이 사람을 만나서 겨우 안정하고 있어. 새 출발하고 싶어.
건강하고 오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하고. 아니 편안한 사람하고….”
“그래야지. 알았어, 지완아. 너 전화 기다린다며?
나중에 좀 편한 시간에 다시 통화하자. 내가 다시 전화할게.”
유미는 전화를 끊었다.
결국 지완이 인규와 이혼을 하는구나. 인규는 어찌 될까?
사람의 인연이란 참 묘하다. 애초에 먼저 만난 건 지완이었지만,
결국 인규랑 더 깊은 관계를 맺었다.
지완은 우정이 애정보다 더 위대하다고 역설했다.
과연 그럴까? 지완과의 우정과 인규와의 애정. 아니 애정이라기보다는 애증에 가까운 감정들….
유미와 두 사람과의 관계도는 앞날에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인규의 거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유미가 늘 부러워하던 온실 속에서 자란 부잣집 딸 유지완도 이런 풍파를 겪는구나.
명품 핸드백이 있듯이 명품 가족이 있다고 뽐내던 지완의 가정이 이렇게 깨지는구나.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인규의 파멸도…. 유미는 식사를 마치고 코냑 한 잔을 느긋하게 마시며
지완을 처음 만났던 스무 살로 기억을 더듬어 갔다.
지완을 만난 것은 봄날이 무르익은 5월이었지만,
유지완이라는 이름을 알고 그녀를 훔쳐보기 시작한 건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였다.
아니 입학식날의 그 교통사고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유미가 서울의 여자대학 미대에 갓 입학해 부산에서 상경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였다.
겨우 학교 앞에 자취방을 구하고 나자 입학식이 코앞이었다.
엄마가 입학식에 오기로 했지만, 식당일 때문에 올 수 없다고 전화를 했다.
서운했지만 유미는 씩씩하게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유미야, 엄마가 못 가보는 대신에 너 꽃다발 들고 사진 하나 찍어서 꼭 보내라.
내가 처녀 때 그 대학에 가보는 게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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