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생은 다른 곳에-3
이유진이 사는 동네는 파리 근교의 남동쪽에 위치한 센 강변의 이브리라는 동네였다.
7번 선의 종점인데, 파리의 가장 큰 차이나타운을 지나는 노선이다.
유미는 전에 이유진과 함께 지낼 때 간혹 장을 보거나 월남국수를 먹기 위해
차이나타운에 가끔 들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종점까지는 가 본 적이 없었다.
종점으로 갈수록 지하철에 남아있는 승객은 중국인과 흑인, 아랍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지하철 종점에서 내리니 오래된 서민아파트가 보였다.
거리에는 노동자 풍의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유미는 그 중에 한 남자에게 주소를 내밀며 물었다.
남자는 아랍 억양이 섞인 프랑스어로 그곳을 가르쳐 주었다.
주소지는 역에서 5분 정도는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유미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공원 앞 광장에서 노인들이 프랑스 전통놀이인 쇠구슬치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쇠구슬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경쾌하면서도 둔중하게 들려왔다.
유미의 가슴속에서도 무언가가 부딪치는 불편한 느낌 때문에 걸음을 걷다 말고 큰 숨을 내쉬었다.
꿈에서도 확인하고 싶지 않은 이유진의 얼굴이었다.
확인해서 어쩌자는 걸까?
이것은 어쩌면 꼭두각시 줄을 움직이는 어떤 손을 만나게 되는 출발점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유미가 맞아야 할 파국의 종점일지도 몰랐다.
유미는 작두를 타는 기분으로 그걸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만치 주소지의 아파트가 보였다.
유미는 동호수를 확인하며 천천히 아파트 건물로 다가갔다.
아파트는 복도식의 낡은 고층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을 눌렀다.
7층에 내리니 아파트 복도는 인적 없이 조용했다.
703호. 유미는 모퉁이에 서서 차마 그리로 다가가지는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갑자기 704호에서 일곱 살 정도 되는 흑인 혼혈 사내아이가 나오더니
현관문 옆에 세워 둔 자전거를 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다가 호기심을 갖고 유미를 힐끔 보았다.
유미는 서성거리는 제 꼴이 더 이상하게 보일까 봐 703호 현관으로 다가가 벨을 누르고야 말았다.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려 보았다.
그래도 아무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걸까? 마음 한편이 갑자기 안심이 되는지 체증이 내려가듯 무언가 쑥 내려갔다.
유미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우편함을 찾았다.
우편함에서 703호를 찾으니 ‘Lee’라고 성이 적혀 있었다.
그럼 정말로 이 아파트에 이씨 성을 가진 남자가 존재한단 말인가?
다시 유미의 가슴이 방망이질을 쳐댔다.
목이 탔다.
아파트 관리인사무실에 가서 관리인을 찾으니 마침 그는 부재중이었다.
유미는 일단 아파트를 나와 카페에 가서 찬 맥주라도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파트를 나와 단지 정문 앞에 있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누군가 유미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그 어린 소년이었다.
소년은 자전거를 끌며 말했다.
“거기 얼마 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아요.”
“얘야, 그럼 전에는 누가 살았는지 아니?”
“어떤 아줌마가 살았는데요.”
“아줌마?”
“네.”
“아저씨는?”
“몰라요. 우리도 가을에 이사왔는데 아저씨는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럼, 그 아줌마에 대해 좀 말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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