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66)생은 다른 곳에-2

오늘의 쉼터 2015. 4. 7. 17:18

(366)생은 다른 곳에-2

 

 

 

유미는 다니엘의 전화를 기다렸다.

 

며칠간 다니엘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대신에 폴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그는 유미가 묻지도 않은 그의 이혼 경력까지 말해줬다.

“유미, 그런데 다니엘이 세 번이나 이혼했거든. 세 번 이혼한 남자란 대단한 재력가야.

 

여긴 이혼하면 마누라한테 다 털리는데 그만큼 재산이 많다는 얘기지.”

“그럼 지금은 싱글이네요.”

“사생활은 몰라. 돈이 그렇게 많은데 외롭게 지내기야 하겠어?

 

장성한 아들이 있지만 독립해서 나가 살고 있을 테니 그 큰 집에 혼자 살지.

 

뿌리부터 부르주아인 집안의 인물이니 유미가 알아두면 좋은 인맥이 될 거야.”

“고마워요, 폴. 늘 신세를 지는 거 같아요.”

“신세는 뭐. 세상은 당구 게임 같은 거지.”

폴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당구 게임이라…

 

당구를 모르는 유미는 그의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감이 잡혔다.

 

폴이 유미를 움직여서 다니엘에게 무언가 작용하고 싶다는 의미 아닐까.

 

그러나 유미는 폴에게 화랑으로 다니엘을 찾아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니엘의 전화를 한편으로 기대하면서 유미는 나름대로 유럽 미술계,

 

아니 세계 미술시장의 바로미터가 되는 파리의 경매장을 한번 둘러보고 싶었다.

 

프렝땅 백화점과 라파이예트 백화점 근처의 드루오 거리에 위치한

 

드루오 경매장은 그림뿐 아니라 거의 모든 물품을 경매한다.

 

유명화가의 원화나 조각품, 판화, 고가구나 보석, 의류 등 다양한 경매가 이루어지는

 

그곳을 답사 차원에서 한번 둘러보고 싶었다.

 

용준의 말에 의하면, 부정축재의 귀재 윤 회장의 개입으로 윤조미술관에서는

 

그림사재기를 할 거라고 했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돈세탁을 하고 세금탈루를 하려면 그림 매매만큼 좋은 것도 없다.

 

윤 회장은 자신의 오른팔이자 며느리인 관장 강애리를 움직여

 

그런 일을 본격적으로 착수할 모양이다.


경매장이 있는 거리 입구에는 감정회사나 사무실이 모여 있었다.

 

드루오 경매장 건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북적였다.

 

경매장 건물 안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다.

 

본격 경매를 하기 전에 전시를 하는 방과 경매가 진행 중인 방에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어느 방에서는 호가하는 경매사의 목소리와 낙찰을 알리는 망치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들려왔다.

 

생선과 과일을 파는 시장 못지않게 인간의 소유욕과 매매욕이 생동하는 현장이었다.

유미는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다가 안내 데스크에서 경매의 전 일정과 경매 물품 리스트가

 

화보로 나온 브로셔 한 권을 사서 경매장을 나왔다.

 

유미의 수중에는 10억원이란 돈이 있다.

 

윤 회장과 출생의 비밀을 봉하는데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윤동진과의 결혼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돈이다.

 

그 돈을 아직까지는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종잣돈이 될지 유미도 아직 결정을 못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 돈은 딸아이 설희의 장래를 위해 묻어두고 싶었다.

 

다만 인간의 생이 빈손으로 왔듯이 유미는 이제 다시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유미는 경매장을 나와 가까운 메트로 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오페라 역에서 내려

 

7번선 지하철을 갈아탔다.

 

며칠 망설이던 일을 오늘 감행하려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번 사진갤러리에서 받은 이유진의 주소로 한번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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