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세상의 기원-14
“출장?”
“ㅋㅋ… 뭐 파리의 연인, 이런 거 찍으러 가야죠.”
“파리의 연인은 똥파리 아니었어?”
유미가 모른 척 농담으로 돌렸다.
“기억하시죠? 1인자가 아웃이면 서열상 2인자가 1인자가 되잖아요.”
“그 서열은 누가 정한 건데? 이게 뭐 선착순 번호표 순서니?
하여간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반갑다.”
“아 참! 그런데 말입니다.”
“또 뭐? 또 빅뉴스야?”
“얼마 전에 누가 미술관으로 찾아왔었어요.”
“누가?”
“남자가요.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다 싶었는데,
작년에 윤조미술관 개관식 할 때 왔던 남자.”
“개관식 할 때 하객이 어디 한둘이었어?”
“이름이 고수익이라고 하던데요.”
“고수익!?”
“쌤과 연락이 안 된다며 어디 외국에 출장이라도 가셨느냐며 지나는 길에 들렀다고 하던데….”
고수익이 미술관으로 찾아왔다?
고수익은 내가 미술관을 그만둔 걸 알 텐데?
“쌤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고수익과는 그의 주소지로 찾아갔다 온 후 전화로 결별을 하고
그 이후 연락조차 하지 않고 떠나왔다.
갑자기 고수익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고수익에게 끌렸던 것은 그의 살인미소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미소의 기원을 따라가 보면 거기에는 이유진의 입으로 통하게 된다.
이유진의 미소…
좀 딱딱하고 진지하게 생긴 이유진이 입을 벌려 웃기만 하면 세상이 갑자기 밝아졌다.
마치 함박꽃이 피는 것을 저속 촬영한 것처럼 화사하게 피어났다.
결국 세상의 기원도,
미소의 기원도 인간의 몸의 어느 구멍이자 문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근데 그 새끼….”
고수익과 이유진의 얼굴까지 한 줄에 꿴 북어처럼 쭈욱 떠올리는데
박용준의 말이 그 줄을 싹뚝 끊었다.
두 얼굴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가고 난 후에도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 곰곰이 생각했는데…
맞아요. 분명해요. 만난 적이 있어요.”
유미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한때의 불장난이었고 어차피 지금은 끝난 인연이라 생각해서 건성으로 물었다.
“만난 적이 있다니?”
“저 대학원 다닐 때 쌤 강의 들을 때 본 적 있어요.”
“그 사람이 내 강의를 수강했다고?”
“아니요.”
“그럼? 난 본 적이 없는데.”
“그럴 거예요.”
“쌤 뒤를 밟은 남자니까요.”
“내 뒤를?”
“네. 왜 제가 말한 적 있잖아요.
예전에 전 쌤을 보기만 해도 설렐 때라 늘 강의 전에 일찍 강의실에 와서
캔 커피 하나 빨면서 쌤이 오는 캠퍼스를 내려다보곤 했어요.
그런데 쌤의 차가 서면 좀 있다 그 차가 서더라고요.
쌤이 주차하고 강의실로 올라가면 좀 있다 그 차가 거길 뜨고요.
처음엔 우연의 일치겠지 생각했는데, 두어 번 그러는 걸 봤어요.
어느 날은 제가 좀 늦어서 주차장을 지나는데, 쌤 차가 세워져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까만 차가 쌤 차 주변에 있었어요.
그때 그 차가 막 떠나려고 시동 거는 걸 보고 운전자를 눈여겨본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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