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세상의 기원-13
전화벨이 한참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차! 시차를 계산해 보니 서울은 벌써 밤 12시가 훨씬 넘었겠다.
내일이 비록 주말이라고 해도 잠든 용준을 깨우는 건 예의가 아니다.
유미가 전화를 끊으려 할 때 갑자기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용준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나야.”
“누구…세요?”
“목소리도 잊었어?”
“아! 쌤!”
“지금이 몇 시인데 잠도 안 자고 술을 마셔? 혹시 내가 연애 사업에 방해한 건 아니지?”
“아뇨, 섹스 사업에 방해를 하고 있어요.”
앗, 용준이 지금 여자와 함께 자는 중?
“미안! 전화 끊을게.”
그때 용준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전화 끊지 마세요!”
“?!”
“ㅋㅋㅋ….”
“뭐야?”
“독수리 오형제가 한창 활약할 때 전화를 하셔서….”
잠시 유미는 무슨 소린가 했다.
“제 신세가 요즘 그렇게 됐어요.
쌤도 떠나고 지완씨와도 쫑나고….
기나긴 밤에 빈 방에 홀로 앉아 쌤과의 추억을 안주 삼아 술 마시며
손장난이나 하고 있던 중에 전화가 온 거예요.”
“이런, 왜 그렇게 불쌍하게 됐어? 지완이와 정말 아주 쫑났어?”
“쫑내재요.”
“지완이네 무슨 일 있어? 그 남편하고 어떻게 됐나?”
“몰라요. 그냥 쿨하게 끝내자는데요. 나도 쿨하게 그러자 그랬어요.”
“그래서 쿨한 게 이 밤에 잠 안 자고 술 먹고 혼자 그러고 있는 거야?”
“가만! 쌤 목소리 들으니까 거북이가 다시 살아나요. ㅋㅋㅋ”
“으이구! 박용준!”
유미는 넉살 떠는 박용준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그게 빅 뉴스야?”
“아 참! 윤 이사하고 강 관장하고 결혼식 해요. 다음달에요. 한 달 남았네요.”
“그래… 강 관장은 잘 있어?”
“이제 좀 안정기에 접어들었나 봐요. 살짝 배가 부른 듯해요.”
“미술관은 잘 돌아가?”
“뭐 그럭저럭… 쌤이 없으니까 저야 재미가 없어요.
전엔 직장에 와도 가슴 설??는데, 이젠 뭐 임자 있는 임신부를 모시고 있자니
그 히스테리에 짜증나죠.
그래도 그걸 다 맞춰주는 게 이 박용준이다 보니 나름대로 신임을 꽤 얻고 있죠.
미술관이 점점 본색이 드러나는 거 같아요.”
“본색?”
“윤 회장님의 입김이 꽤 센 거 같아요.
앞으로 그림을 꽤 사둘 거 같은데… 그게 뭔지 뻔하죠,
뭐. 참 쌤은 어디세요? 이거 어디 외국 같은데….”
“용준, 내 신변에 대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말아 줘. 알았지?
내 전화번호 허락 없이 알려주지도 말고.”
“당근이죠. 제가 누굽니까? 저는 쌤과 끝까지 간다고 했죠?”
“박용준 입싼 남자라는 거 알아.
그런데 내가 말하지 말라는 건 또 절대 말 안 하는 것도 알지.”
“잘 보셨어요. 그러니 저한테만 알려주세요.”
“나 여기 파리야.”
“아, 그렇구나. 와, 좋겠다! 언제 꼭 한 번 출장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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