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세상의 기원-10
이유진은 유미가 힘들 때 SOS를 요청하면 다가와 그렇게 애틋하게 도와주었지만,
어딘지 몸을 사리는 구석이 많았다.
당시 그에게는 한두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있었다.
유미가 가까이 할 빈틈을 보여주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렇지 않으면 유미에게 너무나 초연하다고나 할까?
모욕적일 정도로 무관심했다.
유미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거리를 둔 채 이유진을 대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무심하다가도 유미가 잘 지내지 못하는 걸 알게 되면 선생님이나 고지식한 오빠처럼 굴었다.
그럴수록 유미는 오히려 더 관심을 끌려는 비행청소년처럼 굴게 되었다.
호기심이 많은 유미는 더욱 더 자유분방하게 지냈고,
그것을 일부러 이유진에게 약 올리듯 알리곤 했다.
이유진은 그럴 때마다 큰 관심을 보였고,
유미는 그런 그의 태도가 재미있었다.
유미는, 너 이래도 안 넘어와?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유미에게는 유혹종결자로서의 근성과 기질이 있었던 것 같았다.
종국에는 유미가 나체주의자들의 해변 캠프에 참여하는 문제로 유진과 싸운 게
그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피는 뜨겁고 생각은 미숙한 이십대 후반 시절의 이야기였다.
유미가 이유진과의 예전 기억에 잠겨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폴이었다.
“유미, 지낼 만해?”
“그럼요. 덕분에요. 폴은 잘 지내죠?”
“전에 유미가 부탁했던 거 알아봤는데 말이야.”
“아아, 네!”
유미는 휴대폰을 귀에 딱 붙이고 몸을 똑바로 세우며 경청 자세를 취했다.
“3년 전에 파리 4구에 있는 사진갤러리에서 무슈 리라고 하는 한국인 남자가 전시회를 열었대.
거기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낼 테니 한번 알아봐요.”
“폴, 정말 고마워요.”
“유미가 그렇게 사랑했던 연인을 찾는데 도와 줘야지. 이번에 만나면 놓치지 말고 결혼해버려.”
“참, 내일 위베르씨랑 저녁 식사 함께 하는 약속 잊지 않았죠?”
“응, 나하고 둘이만 데이트하면 좋을 텐데, 위베르를 초청하다니 기분 별로야.
그래서 내가 남자 하나 더 끼울까 해.”
“저야 좋지요. 그런데 어떤 남자?”
“화랑 재벌이라고 하면 좀 뻥이고, 갤러리 주인이면서도 대단한 그림 수집가야.
이 사람이 동양 여자한테 관심이 많단 말이야.”
“알겠어요. 그럼 내일 봐요.”
유미는 폴과 통화를 끝내고 그가 내일 데려오겠다는 남자가 어떤 사람일까 잠깐 생각했다.
느낌이 좋았다. 갤러리 주인이자 대단한 그림 수집가라?
좋은 징조다.
문자 수신음이 들리고 폴이 말했던 갤러리 전화번호가 문자로 도착했다.
유미는 갤러리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A급의 사진 전문 갤러리인 그곳은 꽤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전시하는 공간이다.
유미는 3년 전에 그곳에서 전시했다는 무슈 리라는 한국 남자에 대해 갤러리 홈페이지에서
상세한 검색을 시도해봤으나 오래전 정보라 나오지 않았다.
화랑에 직접 전화를 하니 3년 전 전시한 예술가에 대한 자료는 직접 내방하여
디렉터에게 문의하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유미를 시시때때로 괴롭히는 얼굴 없는 ‘홍두깨’라는 아이디는
이유진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유진은 분명 죽었을 텐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유미는 박용준을 통해서 이유진에 대해 알아보라고 시켰다.
박용준의 말에 의하면,
이유진의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본 결과, 주민등록 말소 상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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