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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세상의 기원-7

오늘의 쉼터 2015. 4. 7. 17:00

(356)세상의 기원-7

 

 

 

“제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이 선생님보다 더 멋지게 불어도 하고 친구도 많이 만들 거예요.

 

그때는 저랑 놀자 그러지 마세요. 아셨죠?”

유미가 그렇게 말하자 이유진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진 앞에서 다짐한 것처럼 유미는 생존과 외로움 때문에 의도적으로 사교생활에 힘썼다.

 

힘썼다기보다 극도로 외로운 몇 달이 흘러가자 조금씩 말문도 트이고 프랑스 사람들이

 

유미에게 말을 붙여오기도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처음에 한둘로부터 시작된 인간관계가 넓어지는 데는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프랑스인들이 ‘수와레’라고 부르는, 저녁에 여는 파티에 몇 번 가서 친구를 사귀면 번식력이

 

높은 토끼처럼 인간관계가 급속도로 새끼를 쳤다.

 

수와레에서 어중이떠중이로 만난 남녀들과 와인에 취해 마리화나를 피우고 환각인 듯한

 

섹스를 하고 곯아떨어지는 적도 있었다.

 

누군가 불어는 배를 맞대고 배워야 가장 빨리 는다고 했지만,

 

그것은 보디 랭귀지로도 충분했다.

 

땅에 발을 붙인 상태가 아닌 공중에 부유하는 생물처럼 닻을 내릴 수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통장에 돈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아껴 써도 1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 막막했다.

 

도대체 무얼 믿고 낯선 프랑스 땅에 왔는지 가끔 기가 막혔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그날은 ‘발레리’라는 여자애의 집에서 밤새 환각파티에 취해 있다가 새벽에 눈을 뜨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마구 떨려왔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유미는 택시를 타고 겨우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덜덜 떨고 있으니 꼭 죽을 것만 같았다.

 

모든 게 다 부질없었다.

 

한국에 두고 온 한 점 혈육인 어린 딸과 몇 번의 자살 미수에 그쳤던

 

진호의 집착어린 사랑마저도 그리워졌다.

 

그들을 당장 불러올 수 없다면 누군가 한국말로 단 한마디의 위로라도 건네주면 좋을 것 같았다.

 

지독한 향수병이 든 걸까? 

 

유미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4개월 만이었다.

 

이유진은 잠이 묻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어, 오유미예요.”

“아아, 오유미씨!”

“아침부터 미안해요.”

“무슨 일이에요?”

“제가… 제가… 꼭 죽을 거 같아요.”

“무슨 소립니까?”

“잠깐… 좀….”

유미는 이상하게 목이 메어왔다.

“제 집에 들러주세요.”

그리고 그만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이유진의 한숨 소리가 잠깐 들렸다.

“기다리세요. 갈게요.”

유미는 적이 안심이 되어 잠에 빠져 들었다.

 

잠결인 듯 꿈결인 듯 벨소리를 듣고서야 유진이 온 걸 알았다.

 

유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몸이 왜 이래요? 많이 수척해졌어요. 병원에 가야 되지 않을까요?”

유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몸이 약해지고 힘들어서 그래요. 몸보다는 마음이 더 힘들어서….”

“으음, 향수병인 거 같은데…?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어요?”

유미는 큰 눈에 물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한국에 가고 싶어요.”

유진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유미를 보며 물었다.

“그건 지금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걸 대신 할 수 있는 걸 말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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