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58)세상의 기원-9

오늘의 쉼터 2015. 4. 7. 17:03

(358)세상의 기원-9

 

 

 

“왜요? 찔리세요?”

“제 의무는 다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요?”

“그런데….”

“그런데요?”

“으음… 제가 개입하고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이곳은 자칫 생활이 좀 문란해질 수도 있거든요….”

“무슨 뜻이죠?”

“아, 아닙니다. 식사하세요.”

유진이 유미의 물음을 회피했다.

“제 생활을 아시는 거처럼 말씀하시네요.

 

우린 4개월 만에 만났잖아요.

 

혹시 저를 몰래 미행했어요?”

유진이 픽, 웃었다.

“얼른 밥 말아서 팍팍 좀 드세요.”

유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유진이 끓여준 꼬리곰탕에 밥을 말아 한 숟갈 입에 넣었다.

 

구수하고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자 온몸의 피돌기가 생생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때요? 속이 풀려요?”

유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먹었다.

 

유진도 수저를 들고 말 없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누군가와 마주 앉아 뜨거운 국을 먹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제가 한국에서도 생활이 조신한 편은 아니란 거 아시잖아요.”

유미는 밥을 먹다 갑자기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속마음은 이게 아닌데,

 

유진이 정말 고맙고 반가운데 말은 왜 이렇게 까칠하게 나가는 걸까.

“섭섭했다면 미안해요. 그런데 유미씨!”

유진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알코올과 대마초, 이런 거에 의존하면 안 돼요.”

헉! 이 남자가 내 생활을 어떻게 알았을까?

“한국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새 인생 펼치라고 이곳에 온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데 그게 제 뜻도 아니고, 어느 날 보니, 저는 그냥 이곳에 툭 떨어져 있네요.

 

누구죠? 몇 푼의 돈으로 나를, 아니 내 인생을 원격조종하는 사람은?”

유미는 결국 또 그 질문을 유진에게 하고 말았다.

“여기 갑자기 오게 된 거, 오유미씨의 의지가 아니라서 힘들다는 거 이해해요.

 

하지만 정말로 이 기회를 새로운 변신의 기회로 삼을 수 있잖아요?

 

그게 바로 오유미씨의 능력이고 또 운명입니다.”

나의 능력과 운명이라…. 유미는 그 말이 너무도 무거워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숨 끝에 갑자기 눈물방울이 곰탕 국물에 툭, 떨어졌다.

 

유미는 그걸 들키기 싫어 고개를 숙였다.

 

유진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시계를 보더니 갑자기 수저를 놓고 외투를 입었다.

“약속이 있어서 가 봐야겠어요.”

그 말을 듣자 허전함과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가지 말아요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지만,

 

유미는 곰탕국물을 삼키면서 꾹 밀어내버렸다.

“그래요. 어서 가보세요. 오늘 정말 너무 고마워요.”

유진은 유미를 보며 망설이듯 말했다.

“명심해요. 이곳은 에이즈 천국이란 걸.”

“…?!”

“자유로움과 자유분방함은 다르죠.

 

발레리라는 여자 친구는 좀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

의아해하는 유미의 표정을 무시하고 유진은 현관으로 향했다.

“오유미씨, 스물여덟 살이죠? 청춘을 이렇게 탕진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유진이 돌아서며 유미에게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유진의 눈빛은 진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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