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세상의 기원-4
“좋습니다. 저는 나쁜 사람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개인적으로 오유미씨에게 해를 끼칠 이유도 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좋은 일을 부탁받은 사람인데… 이름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
독지가 분이 오유미씨의 재능을 안타까워하면서 유학자금을 대겠다고 하십니다.”
“네에?”
유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로또가 당첨됐다 해도 이보다 황당하진 않을 거 같았다.
적어도 자신이 로또를 사긴 했을 테니.
그런데 이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그럼 내일까지 생각을 한번 해 보십시오.
그래도 만나기 싫으시다면,
글쎄 제가 그냥 오유미씨의 통장으로 입금을 해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오유미씨의 미술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서 프랑스에 유학하길 바라시고
또 제가 그곳에 있으니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라고 하셨거든요.
그럼, 제 연락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유미는 남자의 연락처를 받아놓고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남자가 다시 전화했다.
“모르는 남자가 황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만나자고 하니
여자 분이 경계심을 가질 만도 합니다.
그럼 제가 오유미씨가 일하시는 데로 찾아가도 됩니까.”
“아니,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 계좌번호를 알려드릴 테니 입금을 해주시겠어요?
그러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그런데 프랑스로는 언제 돌아가시는데요?”
“일주일 후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부탁받은 돈을 입금하겠습니다. 계좌 알려 주세요.”
유미는 은행 계좌번호를 불러주었다.
“바로 입금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남자는 목소리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아주 예절 바르고 밝은 사람인 거 같았다.
원래 사기꾼은 그런가? 하지만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사기꾼은 돈을 뜯어가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돈을 주겠다는 것 아닌가.
돈이 얼마냐고 물어 보지는 못했다.
다음날 계좌로 들어온 돈은 삼천만원이었다.
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 유미는 두려웠다.
어쨌든 남자를 만나보는 게 나을 거 같았다.
다만 사람들이 많은 안전한 장소에서 만나야 할 거 같았다.
유미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벚꽃놀이가 한창인 여의도로 남자를 불러냈다.
남자는 덕분에 오랜만에 한국의 벚꽃을 볼 수 있게 됐다며 좋다고 환호성을 지를 태세였다.
“아 참, 서로 못 알아볼 텐데,
저는 노란 양복 재킷을 입고 갈 겁니다.
한국에선 이런 옷차림이면 금방 눈에 띄죠?”
노란 양복의 사나이라…
여의도 윤중로의 만개한 벚꽃 사이에서 청바지에 노란 옷을 입은 남자는
정말 눈에 금방 띄었다.
벚꽃은 절정이 지나 바람에 조금씩 나부끼고 있었다.
나무 밑에 서있는 그의 머리에도 꽃잎이 몇 개나 떨어져 있었다.
남자는 유미를 보자 환하게 웃었다.
만개한 벚꽃 아래여서일까?
남자의 웃음은 유미의 어두운 마음마저 환하게 밝히는 묘한 마력이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일까. 유미 또한 처음 보는 남자의 미소에 저절로 환한 미소로 화답을 하고 있었다.
서로 그런 미소를 주고받자 의심은 이상하게 사그라들었다.
“좀 걸을까요? 벚꽃길 환상적이네요.”
남자가 유미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머리 위 휘늘어진 꽃가지를 바라보다가
호르르 날리는 꽃잎을 바라보기도 하며 걸었다.
유미가 커다란 나무 밑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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