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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 세상의 기원-5

오늘의 쉼터 2015. 4. 6. 23:56

(354) 세상의 기원-5

 

 

 

 

“다시 한번 묻겠는데 누가 무슨 목적으로 제게 이렇게 큰돈을 주시는 거죠?”

남자가 그런 유미를 보고 진지하고 더 없이 솔직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건 아쉽게도 대답을 못해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알고 있는 걸 먼저 다 말씀해 보세요.”

“오유미씨에게 유학 정착금조로 목돈을 드리고,

 

유미씨가 프랑스에 와서 공부할 때 정착을 도와주라는 것만 알고 있어요.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제가 이 돈을 가지고 유학을 가지 않고 제 멋대로 쓰면 어떻게 되는 거죠?”

“글쎄요. 그건 목적에 어긋나는 거 같은데요.

 

아마도 그분은 현재의 오유미씨에게 긴급하고도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해서

 

호의를 베푸는 거 같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유미 또한 지옥 같은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어디론가 떠나는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내 상황을 잘 알고 이렇게 처방을 내려주는 그는 누구라는 말인가.

 

갑자기 머리 위로 꽃비가 우수수 쏟아졌다.

 

놀라서 가지 위를 올려다보니 남자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남자가 신발로 나무 둥치를 툭툭 차며 장난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행운의 여신이 오유미씨를 찾아온 모양이에요.

 

이런 기회는 인생에 겨우 한 두 번 올까 말까한 행운 아닙니까?

 

아, 저한테는 왜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지….”

그제서야 유미는 노란 양복을 입은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가만히 있으면 약간 심각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웃으면 금방 장난꾸러기처럼

 

밝고 천진한 소년 같은 남자였다.

“노란 양복 잘 어울리세요.”

유미가 처음으로 남자에 대해 언급했다.

 

연예인도 아니고 어떻게 노란 양복을 입을 수 있는 거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볼수록 어울렸다.

“파리 물 좀 먹었다고 이러냐고 속으로 욕하시는 건 아니죠?

 

색감에 둔한 우리나라 남자들 옷 입는 거 보면 제가 다 답답해요.”

“사진을 공부하신다고요? 그럼 작업도 좀 하세요?”

“예, 같이 병행하고 있어요.

 

저도 공부 시작한 지 2년밖에 안돼요.

 

늦게 시작했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일주일 후에 프랑스 가시면 저도 그때까지 정리하고 가야 하나요?”

“꼭 그러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제 파리 연락처를 드릴 테니 이곳에서 정리하고 오셔서 제게 연락하시면 되죠,

 

뭐. 진로에 대해서도 생각을 좀 해놓으시고요.

 

말이 도와드리는 거지 도움이 별로 안 될 겁니다.

 

저도 이리저리 바쁘고요.

 

오유미씨가 홀로 자력갱생하셔야 할 거예요.

 

하지만 파리는 그렇게 낭만적인 곳도 아니지만,

 

인생에서 예술을 하기 위해서라면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이유진을 만나고 돌아와서 유미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떠날 결심을 했다.

 

누가 주는 돈이든 조건 없이 준다는데,

 

차라리 어떤 조건이라도 지금 이 생활보다는 나을 거 같았다.

 

아니 죽는 거보다는 나을 거 같았다.

 

유미는 비밀리에 서서히 출국 준비를 해나갔다.

 

파리에 가서 유미가 연락하겠노라고 하자 이유진은 일주일 후에 떠났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유미는 진호에게 장문의 편지를 남긴 채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유미를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의 심부름꾼으로 만난 이유진은

 

파리에서 유미를 만나 성실하게 도움을 주었다.

 

다른 남자들처럼 절대 껄떡대는 법이 없었다.

 

이유진과 사랑에 빠진 것은 한참 후의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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