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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파멸 혹은 연민-12

오늘의 쉼터 2015. 4. 6. 23:27

<346> 파멸 혹은 연민-12 

 

 

 

 

 

“와아! 나 미치겠네.”

“원래 또라이 아니었어?”

“걔, 내 동생이야.”

“이런 개 뻥!”

“걘 내 친동생이라구. 고수혜!”

“고수혜인지 꼬소해인지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아.”

“남편 자식이 바람이 나서 지난 여름에 이혼한 내 동생이야.

 

서류 확인해봐.

 

난 그런 점에서 결백해.

 

다만 내가 주식에 돈을 다 꼴아 박아서 현재 돈이 없는 백수라는 게

 

유미씨한테 좀 창피했을 뿐이야.

 

내가 유미씨한테 사기 친 게 뭐야? 말해봐!”

고수익이 오히려 더 펄펄 뛰고 있었다.

 

유미는 피곤했다.

“고수혜 오빠 고수익씨, 그만합시다.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거 같다.”

유미는 전화를 끊었다.

 

고수익이 계속 전화해도 유미는 받지 않았다.

 

어쩌면 집에까지 찾아올지 모른다.

 

유미는 집으로 가는 대신 강화도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가슴이 답답하니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었다.

 

노을이 보고 싶었다.

 

아니 노을처럼 빨갛게 취하고 싶었다.

겨울 평일날의 바닷가는 한적했다.

 

횟집이 모여 있는 동막해수욕장 근처 솔숲에 차를 세우고 유미는

 

큰 유리창이 바다를 향해 나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유미는 우럭매운탕을 시켜 혼자서 소주를 반주로 마셨다.

 

밖에는 서서히 노을이 지고 유미의 얼굴도 붉어졌다.

 

유미는 휴대폰에서 단축키를 눌렀다.

 

그러나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유미는 바닷가로 나갔다.

 

솔숲 밑에 둥근 호를 그리고 있는 모래사장에는 젊은 연인 한 쌍이 걷고 있었다.

 

이제 며칠 후면 새해가 밝을 것이다.

 

사람들은 새해가 오면 동해로 떠난다.

 

그리고 그날의 태양이 마치 갓 태어난 태양인 것처럼 그것을 보고 환호한다.

 

연말에 조용히 지는 해를 보기 위해 서해의 낙조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유미는 해변의 벤치에 앉아 불타오르는 하늘과 석양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몹시 그리운 기분이었으나,

 

또 한편 홀로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쓸쓸함과 고즈넉함이 마냥 좋았다.

 

취기로 인한 열기 때문인지 영하의 날씨도 상큼하게 느껴졌다.

 

그때 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울려왔다.

 

유미가 기다렸다는듯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진호야!”

“전화했었구나.”

“어떻게 단 한 번에 통화되는 적이 없어. 거기가 극락쯤 되는 거야?”

“무슨 일이 있니?”

“강화도에 혼자 와서 술 한잔 했어. 저 노을처럼 빨갛게 타오르고 있다.”

“너 속세에서 꼬실 남자가 이제 동이 났나 보구나.”

“그래. 내 마지막 목표가 너를 파계시키는 거다, 왜? 보고 싶다. 어디 있어?”

“동안 거 중에 있다. 전화 오래 못해. 너 괜찮니?”

“괜찮지 않아.”

“…….”

정효 스님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구나. 우리 정효 스님 정진하는데 미안해.”

“전화 안하려다 너한테 무슨 일인가 싶어 마음이 산란해서 전화했다.”

“스님, 나한테 아직까지 마음 쓰이고 걱정이 돼?”

“네가 마음 쓰이게 하잖아.”

“미안해, 자꾸 전화해서…. 정효 스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말해 봐.”

“불가에 이런 화두가 있잖아?

 

내가 예전에 어느 소설에서 읽은 기억도 나는데…

 

병 속의 새 말이야.

 

정효 스님은 어떻게 꺼내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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