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 파멸 혹은 연민-8
“그러니까 아저씨 얘기는 뭐예요? 윤 회장이 내 아버지라는 거예요, 뭐예요?”
“그건 나야 모르지. 하지만 어차피 이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임인데,
너야 꼬리춤 잘 추면서 많이 뜯어내는 게 좋은 거지.
내가 뭐라 그랬냐? 불가근불가원이라 그랬지?
윤 회장은 네가 딸인 척하고 너무 들러붙으면 끔찍해서 제거하고 싶을 거고,
그렇다고 너를 내치기에는 인간으로서 일말의 불안과 연민은 있는,
뭐 그런 묘한 심리 상태였을 거야.”
뭐야, 이건 거의 점쟁이 수준이잖아.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조두식은 인간의 심리를 꿰는 데는 예리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엄마도 평생 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용당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럼, 전 어떡하면 좋죠? 그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파멸? 그런 건 마지막에 해도 늦지 않아.
일단 그가 제시하는 걸 다 수용해.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윤 회장이 못을 박겠지.
하지만 이제부터 윤 회장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면 돼.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이야. 윤 회장이 네가 딸이 아닐까 착각되게 꼬리춤을 잘 추란 말이야.
수컷들은 암컷이 까 놓은 새끼가 지가 뿌린 씨라고 착각하거든.
하지만 잊지 마. 불가근불가원이야. 좋겠다, 넌. 흐흐흐.”
역시 조두식다운 조언이었다.
“착각이오? 윤 회장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조두식은 모르겠지만, 유미는 윤 회장이 홍 마담의 아이를 의심했던 것과
결국 홍 마담을 죽게 한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인간이 이런 상황에서 너한테 그런 호의를 보인다는 건,
뭔가를 입증하는 거야.
그 인간은 그렇게 친절한 규섭씨가 아니거든.
인간이나 짐승이나 핏줄에는 약한 법이거든. 아님 말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유, 점점 헷갈리는 말만 하네요.”
“귀에도 걸고 코에도 거니 오죽 쓸모가 있냐.
너야 손해 볼 일 없다.
돈 받고 당분간은 여길 떠.
그리고 꼬리춤을 추며 살살 자극해서 불안을 건드리는 거지.
어때? 나의 컨설팅이 마음에 들지 않니?
너 돈 받는 날 컨설팅 비용은 받으러 가마.”
조두식과 통화를 끝내고 나서 유미는 더욱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엄마의 유품을 다시 열어 보았다.
그러다 문제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 가족사진 속의 남자의 얼굴은 칼로 도려져 있어서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윤 회장이 혹시 생부일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다시 보자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부인의 얼굴이 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윤 회장의 서재에서 본 부인의 얼굴과 겹쳤다.
지금 보니 느낌이 비슷해. 그럼 서 있는 사내아이는 동진의 형이고 강보에 싸인 어린애가 동진?
그렇게 생각하자 더없는 조바심과 불안감이 밀려왔다.
수십년간 기다려 온 아버지란 남자가 바로 윤 회장이라면?
그러나 그가 강력하게 부녀 관계를 거부한다면? 아니 어떡하든 확인을 하고 싶다.
하지만 조두식의 말대로 일단은 시간을 좀 두고 처신해야 할 일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 일단은 윤 회장의 제의를 쿨하게 받아들이자.
나 또한 그런 관계를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준비가 필요하니까.
문제는 윤 회장의 마음이다. 설사 유미가 백번 딸이라 해도 윤 회장은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유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정희에게 전화했다.
일단은 확인을 해야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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