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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파멸 혹은 연민-5

오늘의 쉼터 2015. 4. 6. 22:00

<339> 파멸 혹은 연민-5 

 

 

 

 

 

그럼 내가 훔친 게 카피?

 

아님 오리지널? 어쨌든 윤 회장은 테이프를 두 개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교활한 영감 같으니! 그걸 모르고 또 적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니.

“그럼 왜 날 부른 거예요? 왜 또 농락하는 거예요?”

“농락? 오유미가 김지영 행세를 하면서 내게 접근한 건 그럼 뭐냐.

 

그 당시엔 나도 깜빡 속아 넘어갔다만 테이프가 바뀐 사실을 알고 나서는

 

너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미는 분이 끓어올랐다.

“내가 아무리 하찮은 존재이지만, 당신네 부자에게서 이렇게 장난감 취급당하는 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당신은 기어이 당신 아들을 조종해서 내게서 사랑을 빼앗아 갔어요.

 

난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나는 이제 다 잃었어요.

 

당신이 저 비디오테이프로 나를 어떡하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난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요. 이제 함께 파멸할 길로 가겠어요.”

“함께 파멸?”

“그래요. 나 혼자 죽지 않아요. 물귀신처럼 당신네 부자를,

 

윤조미술관을 아니 YB 그룹을 다 침몰시켜버릴 거예요. 이 손 놓으세요.”

쥐도 도망갈 길이 없으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막다른 골목까지 치달은 유미가 흥분에 겨워 이를 갈며 말했다.

“당신은 아주 비열한 사람이에요.

 

출세를 위해서는 온갖 악행을 일삼는 나쁜 사람이라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유미가 벌떡 일어서서 나가려 하자 윤 회장이 불렀다.

“그래. 너를 이 자리에서 죽여서 흔적을 없앨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벨을 누르면 말이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없다. 나도 사람이니까.”

윤 회장의 목소리가 끝에 살짝 떨린다고 유미는 생각했다.

“앉거라. 너와 조용히 얘기하고 싶구나.”

유미는 거부할 수 없는 기운을 느끼고 윤 회장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술 할래?”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난 한잔 하고 싶구나.”

윤 회장이 장을 열자 양주병들이 보였다.

 

그가 위스키를 잔에 따라 두 모금 마시고 깊은 숨을 쉬었다.

 

그리고 파이프에 불을 붙여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가진 자들은 파멸을 두려워한다.

 

이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유미는 파멸의 카드를 제시했다.

 

유미는 밑져야 본전이지만, 아니 잃을 게 약간 있겠지만,

 

가진 자들은 오히려 약간의 균열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돈으로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들의 명예와 도덕성은 때로는 돈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돈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더 명예와 도덕성으로 포장하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유미는 윤 회장이 그런 인간 유형이라 믿는다.

 

그래서 그는 유미와 함께 벌일 이전투구가 끔찍하게 여겨질 것이다.

 

협상을 시도할 것이다.

“너는 이해를 못할 것이다만…

 

만약 네가 그렇게 함께 파멸의 길을 간다면 너도 결국엔 후회할 것이다.” 

 

“후회라고요? 저는 이제 어차피 잃을 돈도 명예도 도덕성도 없거든요. 제가 왜요?”

“너도 사람이니까.”

윤 회장은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물론 너도 마음먹고 나를 파멸시키려 한다면 제대로 한 방 먹이겠지.

 

너도 한 성깔 할 테니까. 네 에미처럼.”

네 에미처럼? 유미가 물었다.

“우리 엄마를 아세요?”

“…네가 오인숙의 딸이라는 거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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