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 파멸 혹은 연민-7
윤 회장과의 만남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된 유미는 집에 돌아와
밤새도록 혼란 속에 휩싸였다.
세상에 이런 우연도 있나? 우스웠다.
마치 자신이 통속적인 막장 드라마 속에 들어온 거 같다.
재벌 2세와의 결혼, 게다가 뭔가 석연치 않은 출생의 비밀.
윤 회장이 엄마와 모종의 인연이 있었다?
그러나 유미는 윤 회장에게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엄마는 유미를 낳을 무렵에 여러 남자와 관계를 가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그 당시 그런 엄마의 상황을 알고 있었을까.
결국 그런 상황을 그가 알게 된다면, 어쩌면 죽은 엄마를 모독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와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는 왠지 무장 해제가 된 느낌이 들었다.
윤 회장은 어림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유미는 왠지 그가 아버지가 아닐까,
소녀 적부터의 뜬금없는 상상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그는 냉혹하게도 조건을 내걸며 돈을 제시했다.
그걸 보면 그는 꿈에도 내가 자기 딸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고,
그럴 리도 없다고 믿는 것이다.
그는 엄마와 오래전에 계산을 끝낸 일이 다시 대를 이어 자신과 아들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 초에 이모가 나를 불러 건넨 땅문서가 생각났다.
나를 낳은 후 엄마가 어디선가 돈 가방을 들고 온 것을 조두식 몰래 이모가
자신의 이름으로 땅을 샀다는 말.
그런데 그렇게나 통화가 되지 않던 조두식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다음 날 오후였다.
회사에는 사직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출근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늦은 아침을 먹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저씨, 통화하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통화가 힘들어요?”
유미가 먼저 불평부터 터트렸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전화했잖니.”
“그럴 줄 알다뇨?”
“텔레파시가 느껴지더라. 냄새도 나고.”
“무슨 냄새요?”
“나야 돈 냄새 맡는 귀신 아니냐? 흐흐흐….”
“하여간 전화 잘하셨어요.
집에 저녁도 먹을 겸 좀 오실래요? 갈치조림 해 놓을게요.”
“아니, 가기 좀 힘들다.
용건은 전화로 얘기해도 충분하지 뭐. 너 무슨 일이 있지?”
“전화로는 글쎄….”
그러나 유미는 조두식에게 윤 회장과의 일을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조두식은 말했다.
“나쁘지 않은 거래긴 한데, 좀 아쉽긴 하다.”
“아저씨, 거래는 둘째 치고, 윤 회장과 엄마의 인연은 어떤 거예요?
혹시 저의 생부는 아닐까요?”
유미는 마침내 궁금하던 걸 물었다.
“내 감으로는 아마 그럴 확률이 아주 높다고 본다.”
“정말요? 전혀 그런 티를 안 내던데.”
“윤 회장은 냉혹하고 계산적인 인간이야.
설사 네가 친딸이라 해도 지금 와서 돈 뺏기기 싫어서라도 더 그럴 거고.
사실 37년 만에 친딸이 나타난다 해도 무슨 정을 느끼겠냐.
더구나 제 아들과 붙은 일을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오히려 정이 떨어졌을 텐데.
일은 참 재미있게 굴러갔는데 말이야.”
조두식의 말을 듣고 보니 소름이 돋았다.
윤동진의 존재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어쩌면 윤 회장 스스로는 그렇게 믿고 있을 거야.”
“무얼요?”
“너가 자기 딸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거야.
만약 네 엄마가 또 그렇게 주장했다면.
그게 바로 수컷의 불안이고 불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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