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29> 무정부주의자-9

오늘의 쉼터 2015. 4. 6. 17:31

<329> 무정부주의자-9 

 

 

 

 

유미는 책상 위의 전화기를 들었다.

“관장님, 전화 바꿨습니다.”

애리의 목소리는 기운이 없었다.

“오 실장님, 내가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당분간 회사에 못 나갈 거 같아요.”

“개인적인 일이오?”

“지금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오 실장님 사표 내는 거 좀 연기했으면 좋겠어요.

 

아니, 없던 일로 해 달라고 제가 위에다 말해 볼까 해요.”

“없던 일로요?”

“오 실장님 같은 인재를 우리 미술관에서 그렇게 대우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부당하지. 부당하고말고. 다 너 때문에 이런 사단이 나는 거란다.

 

눈은 고급이라 고급 인재를 알아보긴 하는구나.

 

유미는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맴도는 말을 곱씹었다.

“글쎄요. 회사의 방침이니 저는 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알았어요. 연락할 일 있으면 회사로 다시 연락할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 유미는 강애리가 말한 개인적인 일이 도대체 뭘까를 생각해 보았다.

 

어제 잠깐 회사에 들른 강애리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윤동진을 보는 눈빛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윤동진이 나간 후 강애리도 곧 퇴근을 했으니 어쩌면 윤동진과 만났을지 모른다.

 

동진이 애리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말한 걸까?

 

그게 물론 유미라고는 말하지 않았겠지.

 

애리는 동진과 유미의 관계를 지금은 꿈에도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동진이 약속대로 뭔가를 결정하려면 애리부터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른다.

 

유미는 동진의 근황이 궁금해서 금기라는 걸 알지만 망설이다 초간단 문자를 넣어 보았다.

‘ㅇㅋ?’

오케이?라고 물었으나 답이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일까?

 

그런데 오라는 문자 답은 안 오고 용준이 불쑥 들어왔다.  

 

“요즘 많이 심란하시죠? 저만 붙어 있게 돼서 참 죄송하기도 하고.”

“약 올리니? 충성을 맹세한 보디가드면 용준도 그만둬야 되는 거 아냐?”

유미가 용준을 떠보듯 물었다.

“쯧, 그런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보니.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

 

몸은 여기 있어도 저는 해바라기처럼 쌤이 계신 방향으로 고개를 빼고….”

용준이 장난스레 고개를 빼고 유미를 쳐다보았다.

“거북이 춤을 춰라.”

유미가 웃으며 말하자 용준이 고개를 바지춤으로 향하며 눙쳤다.

“ㅋㅋ 안 그래도 얘도 춤을 추고 있어요.”

“너 땜에 미쳐. 그래 웃고 살자.”

“저도 쌤의 상황에 따라 차후에 거취를 결정할 테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저 나름 의리 있는 놈이에요.”

“그런데 강애리에게 무슨 일이 있나? 뭐 안테나에 잡히는 거 없어?”

“왜요? 요즘엔 통 트위터도 안 하는 거 같던데….”

“당분간 회사에 못 나온대. 나더러 사표 내지 말라는데?”

“정말요? 혹시 뭐 죽을병에 걸린 거 아닐까요? 얼굴이 복 없게 생겼잖아요.”

“야, 걔가 복이 없으면 도대체 누가 복이 있는 거야? 복은 뭐 복어가 다 주워 먹냐?”

“그러게요. 제가 무슨 일인지 캐치해 볼게요. 그나저나 지완씨가 오늘 밤 만나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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