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27> 무정부주의자-7

오늘의 쉼터 2015. 4. 6. 17:28

<327> 무정부주의자-7 

 

 

 

 

강애리는 다음날 뒤늦게 출근해서 작고화가전 오픈식에 잠깐 얼굴을 비치고 일찍 퇴근했다.

 

그림값이 비싼 유명한 작고 화가들의 전람회라 그런지 ‘큰손’들이 눈에 제법 띄었다.

 

강애리는 그들에게 잠깐 얼굴마담 노릇만 하고 유미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서둘러 나갔다.

 

왜냐하면 윤동진이 식에 잠깐 얼굴을 비쳤기 때문이다.

 

그가 식이 끝나고 내빈들에게 잠깐 인사를 나누다 급히 자리를 뜨자 강애리도 서둘러 나갔다.

동진과 3초간 눈인사를 나눈 게 전부였다.

 

동진은 그저 ‘공식적인 표정’만 짓고 있어서 유미는

 

그의 얼굴에서 어떤 심경의 변화도 읽을 수 없었다.

 

섬약한 남자지만, 포커페이스에 능하다.

 

일터를 냉혹한 전장(戰場)으로 여기도록 키워진 덕분일 것이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자로 키워진 토끼 같은 남자.

 

유미는 가끔 그의 분열적인 심리를 이해할 만도 했다.

 

어쨌거나 그래도 바깥에서 상사로 만나는 그는 늘 낯설었다.

 

이제 동진이 유미와 약속한 D-데이가 일주일도 안 남았다.

강애리가 지시한 뒷일을 마무리하고 직원들과 강애리를 대신하여

 

저녁회식을 주최하고 있을 때 정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영아, 별일 없지? 너 손님들하고 있는 거 같은데.…혹시 방해했니?”

“아, 정희 언니! 괜찮아요.”

“지난번엔 무슨 돈을 그렇게 놔두고 갔니.”

“그거, 별거 아닌데.”

“넌 참 마음이 고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천사 같았지. 참, 그런데 말이야….”

정희가 약간 머뭇거렸다.

 

유미는 직감적으로 뭔가를 느끼고 직원들에게 손으로 인사를 하고는 핸드백을 들고 나왔다.

“너 회장님께 한번 들러야겠다. 다음 주에 시간 좀 내라.” 

 

“언니는 언제 가는데?”

“지영아, 그런데… 너만 부르시는 거 같아.”

“나만? 왜?”

“아유, 얘는! 순진한 척하기는…

 

그래서 가기 전에 너한테 약간의 교육을 좀 시키라는 엄명을 받았어.”

“어떡하지?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가야지!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교육이래봤자 별거 아니야.

 

그냥 너가 마음에 드시나봐.”

유미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다시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고 날짜를 보니 다음 주 토요일이면 D-데이 다음날이었다.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면서 유미는 곰곰 생각했다.

 

일이 엉뚱한 곳에서부터 이상하게 풀리는구나.

 

인생, 참 요지경이구나. 황태자비가 되는 것보다 황후가 되는 것이

 

YB그룹의 안주인이 되는 지름길이겠지.

 

어차피 사랑이 아니라면….

하지만 의리가 있지. 동진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어쨌든 동진과의 약속이 선약이니까.

 

YB그룹의 돈과 권력이 탐이 나기는 하지만,

 

윤 회장이라면 밥맛 없는 재수대가리 아닌가.

 

그러나 젊긴 하지만 취향이 맞지 않는 동진보다 기운 없는 노인네가 차라리 편할지도 몰라.

 

어차피 그 결합은 만족할 만한 성적 결합은 아니니까.

유미는 다가오는 자신의 미래에 부쩍 불안감이 느껴졌다.

 

까짓, 모 아니면 도다.

 

그렇게 대범하게 생각해 봐도 찝찝했다.

 

윤 회장이 자신에게 입맛을 다시는 게 현실적이 된다면?

 

그리고 윤동진이 강애리와 결혼한다면?

 

만약 자신이 그런 콩가루 집안에 들어가게 된다면?

 

아이고, 무슨 ‘페드라’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들어가 잠을 자려 해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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