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무정부주의자-4
눈을 뜨니 동진이 앉아서 잠들어 있다.
시계를 보니 이미 새벽 다섯 시가 넘었다.
유미는 동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해서 그와 결혼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와 내연의 관계로 살아가는 것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주제가가 사랑밖엔 난 몰라라고?
유미는 피식, 웃었다.
욕망이라는 것은 눈 가린 경주마 같다.
너무 맹목적이다.
욕망의 길은 일방통행이다.
한 번 시동을 건 욕망은 브레이크가 없다.
고로 욕망은 위험하다.
하지만 유미는 다시 생각한다.
여기서 멈추는 건 더 위험하다고.
유미는 동진에게 다가가 그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동진이 눈을 떴다.
멍한 눈으로 유미를 바라보았다.
“나도 동진씨를 이런 식으로 만나고 싶진 않았어.
얼마나 애간장이 타게 보고 싶었는데. 나쁜 사람. 내 속도 모르고.”
유미가 동진의 얼굴을 가슴에 안았다.
유미의 젖무덤 사이에 동진의 뜨거운 입김이 간질거렸다.
동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안해. 유미 자는 동안 밤새 생각해 봤어. 내게 시간을 열흘만 좀 줘.”
“동진씨, 회장님이 그렇게 어렵다면 마지막으로 내가 한 번 나서볼까?”
동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남자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한번 부딪쳐 볼게.”
유미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해봐야겠지.”
“그런데 말이야. 나 좀 풀어 줘. 아까부터 오줌이 마려워.”
“빈 우유병이라도 갖다 줄까? 열쇠 버렸다니까.”
“에이, 그러지 말고. 정말?”
“응, 정말.”
“밑에 내려가서 찾아와.”
“내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데. 한 3일 묶어 둘라 그랬는데….”
“미안해. 성질 내니까 자기 정말 무섭더라.”
“그러니까 두 번 다시 날 갖고 놀지 마.
내가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한 여잔데.
그나저나 내가 또 자기를 어떻게 믿고 풀어 주냐.”
동진이 호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한 번 더 믿어 봐.”
유미가 잠시 생각하다 흔쾌히 대답했다.
“좋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믿어보지.”
유미는 눈을 흘기며 벗어 놓은 가운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보이며 웃었다.
“짠!”
“허, 여우!”
“그런데 더 스릴 있고 좋지 않았어?”
“오줌을 지릴 뻔할 정도로.”
동진이 수갑에서 풀려나자 두 손으로 유미의 가슴을 그러쥐며 말했다.
동진이 화장실로 가자 유미는 킬힐을 신은 채로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킬힐을 신어서 더 우아하게 긴 다리를 세운 채 살짝 벌리고 누운 모습이
포르노 잡지의 한 장면처럼 거울에 비쳤다.
부리나케 화장실을 다녀온 동진이 옷을 활활 벗어부치며 유미에게 다가왔다.
동진의 살이 몇 군데 채찍 자국으로 부어올랐다.
동진은 거미줄처럼 촘촘한 유미의 검은 그물 스타킹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그것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걸려든 수거미를 보고 포식자의 기쁨을 음미하듯 유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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