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무정부주의자-3
동진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유미의 얼굴과 가슴골로 땀이 흘러내렸다.
“말해. 정답이 뭐야?”
유미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동진이 묘하게 흥분한 눈빛으로 유미를 바라보았다.
“네 몸을 만지고 싶어.”
“누구 맘대로.”
유미가 다시 채찍을 들고 동진의 어깨를 내리쳤다.
동진이 신음을 내질렀다.
유미가 몸이 닿을 듯 말 듯 동진의 코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이 변태! 좋냐? ”
“이제 날 좀 풀어주지, 응?”
“윤동진씨, 무늬가 비슷하니까 이거 게임으로 보이나 봐.
이거 게임 아니거든. 고문이거든.”
손이 묶인 동진이 유미에게 키스를 하려는 듯 얼굴을 가까이 내밀었다.
유미가 물러나며 말했다.
“있는 놈들은 고통을 몰라.
손만 내밀면 뭐든지 다 쥘 수 있으니. 널 말려 죽일 거야.”
유미가 베란다 쪽으로 나가 뭘 집어던졌다.
“뭐야?”
동진이 물었다.
“응? 수갑 열쇠. 베란다 밖으로 집어던졌어.”
그제서야 동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있잖아. 사람이 언제 제일 배신감을 느끼는 줄 알아?
체념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유혹에 놀아났다는 자괴감이 들 때야.
너는 나보다 있는 놈이라고 날 그렇게 살살 갖고 놀았지.
자기 생각해서 열쇠를 버린 거야. 자기도 체념하기엔 그게 좋지.”
유미는 동진에게서 물러나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그래. 맨땅에 헤딩하면서 사는 나 같은 사람은 세상사 눈 질끈 감고 마음먹기 나름이야.
까짓, 도 아니면 모야.
그게 나 같은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고.
하지만 윤동진, 당신은 확신하지도 못하는 말을 내뱉으며 나를 우롱하고,
자신이 없으니까 나를 피하고…급기야는 나를 잘랐잖아.”
“오유미. 너는 원하는 걸 맘껏 욕망하는 자유나 있지.
너가 야생마라면, 난 사육장에서 크는 경주마야.
늘 내 인생이 이용되고 있는 느낌, 그거 고약해.”
“집어 쳐. 태어나서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한 거지 소녀에게
신선로는 보기보다 맛이 없다는 식의 그런 엄살이 통해?”
유미는 갑자기 윤동진이 뻔뻔하게 여겨져 다시 채찍을 들고 그의 어깨를 내리쳤다.
“유미, 나 좀 풀어 줘. 안고 싶어. 사랑의 성공이 결혼은 아니잖아.
현실과 타협하면서 우린 우리대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면 되잖아, 응?”
동진이 유미에게 호소했다.
“유미가 미술관 관두고 아버지 눈앞에서 사라지는 척해. 내가 아파트를 하나 얻을게.”
유미가 동진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나 누군가의 세컨드로 살 거 같으면 당신 아니라도…우리 그만두자.
술이 오르나 봐. 나 너무 힘들고 졸린다.”
유미가 소파로 올라가 쓰러졌다.
동진이 묶인 팔을 흔들며 소리쳤다.
“유미, 이거 좀 풀어 줘. 너 진짜 이럴래!?”
유미는 동진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대로 잠으로 빠져들었다.
닿을 듯 말 듯한 눈앞의 소파 위에 섹시한 가터벨트를 하고 킬힐을 신은 채로
잠들어버린 유미의 미끈한 다리가 펼쳐졌다.
눈앞에 알짱대는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개의 심정이 이럴까.
동진은 이래저래 화가 치밀었다.
'소설방 > 유혹' 카테고리의 다른 글
<325> 무정부주의자-5 (0) | 2015.04.06 |
---|---|
<324> 무정부주의자-4 (0) | 2015.04.06 |
<322> 무정부주의자-2 (0) | 2015.04.06 |
<321> 무정부주의자-1 (0) | 2015.04.06 |
<320> 갈림길-17 (0) | 2015.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