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 갈림길-17
그런데 다음 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유미가 퇴근해서 아파트 현관의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냈다.
고지서와 광고 우편물 틈에서 누런 서류봉투를 발견했다.
그런데 발신주소는 물론 수신주소도 없는 깨끗한 봉투였다.
집으로 올라와 그것을 열었을 때 거기서 나온 것은 몇 장의 사진이었다.
밤중에 동진이 혼자 유미의 아파트를 나오는 사진 두 장과 차 안에서
유미와 동진이 키스하는 사진 두 장, 유미의 집 근처에 있는,
두 사람이 몇 번 들렀던 블루문에서 함께 나오는 사진이었다.
동진이 취한 유미를 껴안다시피 부축하고 있었다.
친절하게도 사진에는 날짜까지 기록돼 있어서 유미는 모두 기억이 났다.
그러나 불친절하게도 어떤 메모나 편지는 들어 있지 않았다.
이건 도대체 뭐지?
누가 이런 걸 보낸 걸까?
적인지 동지인지도 모를 불분명한 누군가가 보냈다는 것만 확실할 뿐.
유미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사진을 곰곰이 들여다봤다.
두 사람이 키스하는 사진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지난 1월에
출장을 다녀온 동진이 유미의 차 안에서 목걸이를 선물하며 키스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진은 동진이 밤중에 유미의 아파트를 나서는 사진… 맞다.
기억을 더듬으니, 그날 밤은 인규가 유미의 집에 왔다가 동진과 함께 있는 걸 보고
처용무를 춘 게 아니라 미친 듯 차를 몰고 나가 실종되던 날이었다.
그 다음 날 통화에서 동진이 이렇게 말했던 게 기억난다.
“글쎄…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긴 했어.
아파트 현관을 나오는데 어디선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던데,
느낌이 그게 꼭 나를 찍는 거 같은 느낌이 들더란 말이지.
내가 파파라치가 붙는 유명 연예인도 아닌데.
게다가 타이어엔 펑크도 나 있었지.”
도대체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 왜? 그리고 동진이 나를 피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이 사진들을 보낸 목적은 무엇일까?
그동안 발신인을 알 수 없는 편지나 옛날 애인과 찍은 동영상 일부를 보내며 협박을 한 메일…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같은 인물일까?
그런 것들이 성공의 걸림돌이 되고 유미를 의기소침하게 했던 건 분명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블로그 관리를 하던 사이버 세계에서도 유미는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같은 모바일 시대에 역공을 당하지 않으려면 당분간 몸을 사려야 한다.
신상 털리고 자칫 한방에 훅 가지 않으려면….
그러나 유미는 직감적으로 이번에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자기를 도와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이걸 기회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유미는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았다.
자신을 피하고 있는 동진에게 던지는 마지막 미끼라고 생각하며 동진에게 메일을 썼다.
동진이 읽든 읽지 않든, 일단은 낚싯밥을 던지고 나서 행동할 일이다.
‘동진씨, 못 본 지 꽤 되네요.
전화도 메일도 모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아니, 어쩌면 내가 이해하지 못할 무척 괴로운 상황에 당신이 처해 있을지 모른다는
가정을 하며 당신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혹시 당신이 나를 피하는 건 아닌지…
그 생각만 하면 몹시 괴로워요.
그런데 더 괴롭고 곤혹스러운 상황이 생겼어요.
누군가 당신과 나의 사진을 보냈어요.
이걸 보고 있으니 우리가 사랑했다는 사실은 피할 수가 없네요.
당신은 사랑에 비겁하지만 나는 사랑에는 꽤 용감한 여자랍니다.
어떡하죠?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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