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317> 갈림길-14

오늘의 쉼터 2015. 4. 6. 17:06

<317> 갈림길-14

 

 

 

 

어젯밤, 정희의 집에서 정희의 마사지학 강의를 들으며 마사지를 받은 후 깊은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뜨니 이른 아침이었다.

 

옆에는 정희가 잠들어 있었다.

 

선글라스를 벗고 있는 정희의 모습은 처음 본다.

 

감은 눈이 아름다웠다.

 

길고 숱 많은 속눈썹이 가지런하다.

 

유미는 망설이다 지갑 안에 든 현금을 모두 빼내어 머리맡에 놓아두고

 

정희의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어제는 정희의 손님이었으니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성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편안한 휴식과 달콤한 잠을 누렸으니 돈이 아깝지 않았다.

 

가끔 와서 마사지도 받고 또 배우고 싶어졌다.

밖으로 나오니 눈이 15센티미터 정도 쌓여 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유미는 스스로 첫 발자국을 내어 길을 만들며 지하철역으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오며 어제 정희에게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너 몸이 많이 긴장되어 있어. 신경이 늘 활시위처럼 팽팽하니까 깊은 잠도 못자지.

 

사람 몸에는 열여섯 개의 극혈이 있다.

 

 여기, 여기….

 

혈을 잡아 막힌 혈을 풀어주고 순환을 시켜주면 조금씩 순환이 되면서 잠도 잘 올 거야.

 

마사지를 하다보면 인간의 몸이 참 오묘하다는 걸 느껴.

 

인간의 몸엔 급소도 있고 기분 좋은 성감대도 있고.

 

그러니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고.”

정희가 짚어주는 혈이라는 곳이 생각보다 많아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희의 손길에 따라 너무도 편안한 잠에 빠졌던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두려움 없이 잠으로 빠지듯이 죽음으로 빠져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미는 처음으로 그런 죽음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출근한 유미는 외근 핑계를 대고 미술관을 나왔다.

 

어제 정희에게서 마사지를 받아서인지 몸이 개운했다.

 

몸이 개운하니 우울한 기분도 좀 사라지고 사기가 충전되었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겠어. 정공법을 택하리라.

 

돌격, 앞으로! 유미는 곧바로 YB그룹의 본사인 YB개발로 향했다. 

 

10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린 유미는 윤동진의 사무실로 곧바로 걸어 들어갔다.

 

비서실의 여비서가 일어나서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미술관의 오유미 실장인데요. 윤동진 이사님 뵈러 왔어요.”

“이사님, 지금 외부에 나가 계시는데….”

역시 한국에, 아니 서울의 지척에 있었구나.

“언제쯤 들어오시나요?”

“그건 정확히 모르겠어요.

 

업무는 오래 걸리지 않을 텐데,

 

곧 점심시간이 되니까 곧바로 식사하시고 들어오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일단 보고는 드려야 하니 용무가 뭔지 제게 말씀하세요.”

“윤 이사님이 제게 따로 맡기신 프로젝트에 관한 건데요.

 

일단 보고는 나중에 드리시고요.

 

그냥 여기서 좀 기다릴게요.”

“뭐 그러시다면….”

여비서는 마뜩잖은 얼굴로 마지못해 접대용 의자에 앉아 기다리게 했다.

 

사무실로 들어온 윤동진이 유미와 갑자기 마주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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