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8장 변태기 3

오늘의 쉼터 2015. 4. 6. 00:19

제8장 변태기 2 

 

 

상해백화점 스카이 라운지 무대.


무대를 꾸미고 조명을 설치하고 모델들이 리허설을 하느라 분주했다.

 

진국과 일행은 홀 밖의 창가에 서서 무대 안쪽을 구경하고 있었다.

 

초청장이 없으니 들어갈 수 없었다.

 

무대 입구에는 ‘비라 중국 진출 5주년 기념 란제리 쇼’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 이들을 붙잡지 못한 우리 잘못이지.”

 

진국이 자조적인 말투로 읊조렸다.

 

“그래도 엄연히 계약서를 썼다면서요.”

 

공정혜는 여전히 씩씩거렸다.

 

“비라 이 새끼들 정말 치사하네.”

 

병달도 거들었다.

 

2시 30분. 홀에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저기!”

 

병달이 손가락으로 홀 맨 앞자리에 앉는 남자를 가리켰다.

 

그는 강 이사였다.

 

그리고 그 곁에 있는 여자는 분명 노애란이었다.

 

“아니, 강 이사와 노애란이 왜 여기에 나타난 거죠?”

 

“씨팔~ 설마설마 했는데.”

 

진국은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선배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병달이 놀란 눈으로 진국을 쳐다보았다.

 

다른 팀원들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좀 더 지켜보자.”

 

진국은 담담했다.

 

진국이 입을 다물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팀원들은 창가에 붙어 서서 안을 살폈다.

 

속속 빈자리가 차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 쇼에 오기로 되어 있던 백화점 관계자들이 다 여기에 모였네요.”

 

마평수가 씁쓸하게 말했다.

 

“선배님 갑시다. 뭘 더 기다려요.”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공정혜는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진국은 묵묵히 무대 쪽에 눈길을 주었다.

 

사회자가 나와 쇼 시작을 알렸다. 팀원들의 눈길도 무대로 향했다.

 

모델들이 무대에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모델들이 입고 있는 속옷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있었다.

 

“첫 타임 모델들의 속옷 주제는 바로 엽기입니다.”

 

밑이 터진 속옷. 색상이 다르고 앞면과 뒷면을 끈으로 연결 시켰다는 점만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코지’에서 짜낸 아이디어와 같은 모델이었다.

 

팀원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무대를 지켜보기만 했다.

 

27종의 속옷을 교묘하게 변형해서 만들어냈지만

 

그 중 절반 이상은 거의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런 후레자식들을!”

 

병달이 스카이 라운지 홀로 뛰어들어가려 하자

 

입구에 서 있던 건장한 중국 청년들이 그를 막아섰다.

 

“아무리 상도의가 시장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해도 이건 아니야 임마. 놔!”

 

병달이 용을 썼지만 중국 청년들은 병달의 멱살을 가볍게 잡고 뒤로 내던졌다.

 

병달은 반들거리는 바닥에 뒹굴었다.

 

병달이 씩씩거리며 진국을 빤히 올려다 보았다.

 

옛날의 그 무술 솜씨는 다 어디에 갔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진국은 침통한 표정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쇼가 끝날 즈음 노애란이 무대 위로 올라가 인사를 했다.

 

쇼 구경을 온 관계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대단한 성과라는 반증이었다.

 

‘코지’의 작업을 고스란히 ‘비라’에 빼앗긴 것이었다.

 

봉수는 분노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공정혜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병달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병달씨,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공정혜는 기어이 병달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법으로 안되면 언론에라도 알려서 응징을 해야 돼요.”

 

조병달은 공정혜를 다독거리며 씩씩거렸다.

 

‘코지’의 팀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넋을 잃고 서 있을 때

 

홀의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 ‘코지’의 란제리 쇼에 오기로 되어 있던 백화점 담당자들은

 

‘코지’ 직원들을 못 본 척하고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나온 무리 속에 강 이사와 노애란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당당하게 ‘코지’ 직원들 앞을 지나갔다.

 

노애란이 봉수 앞에 잠깐 멈춰 서서 봉수를 빤히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봉수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런 봉수를 병달이 눈여겨보았다.

 

결국 팀원들은 한마디 항변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하죠?”

 

늘 느긋하던 마평수도 속이 타는 모양이었다.

 

“일단 서울로 전화 넣어보죠.”

 

진국이 서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스피커폰으로 통화 상태를 바꾸었다.

 

“저 조진국입니다.”

 

“여기는 난리가 났습니다. 난리가.”

 

박장수였다.

 

벌써 란제리 쇼가 취소되었다는 사실이 서울까지 알려졌다니.

 

놀랄 일이었다.

 

“오늘 여기서 강 이사를 봤습니다. 노애란씨도.”

 

“그, 그런 죽일 놈들이 다 있습니까?”

 

“지금 거기는 어떻습니까?”

 

“오성에서 회장님이 오셨고 소식도 없던 차 사장님도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홈쇼핑 쪽으로 가셨던 박춘만 실장님이 책임을 맡고 계십니다.”

 

“그럼 실장님 좀 연결해 주십시오.”

 

박장수가 박춘만에게 전화를 연결하는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 사람의 배신으로 ‘코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생긴 것이었다.

 

오성 회장이 와 있다면 약속대로 이런 사태를 알고 ‘코지’를 정리하기 위해 온 게 뻔했다.

 

“조, 조팀장인가?”

 

박춘만이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이 사람아, 일을 어떻게 처리했길래.”

 

진국을 비난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그도 알고 있을 터였다.

 

“실장님!”

 

병달이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어, 그래. 조병달.”

 

“지금 진국 선배가 잘못한 겁니까?”

 

“매사 조심했어야 한다는 거지. 참,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지금 은행에서 당장 대출금을 회수한다고 난리야.

 

어디 그것뿐인가? 한국 내의 다른 백화점에서도 더 이상 우리 물건을 받지 않겠대.

 

대리점도 올해로 계약을 끝내겠다며 보증금 반환 청구를 해오고 있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공정혜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병달도 그 곁에 슬그머니 앉았다.

 

“어, 잠깐, 여기 사장님께서 오셨네. 잠시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수화기로 들려오면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고들 많습니다.”

 

차몽현 사장이었다.

 

“여기 일은 내가 잘 마무리했습니다.

 

제가 아버지로부터 받을 상속분 일체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은행 대출금은 해결을 했습니다.

 

문제는 여기 백화점들하고 대리점 보증금 반환이 문젭니다.

 

그 동안 우리가 너무 방만하게 운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쨌든 여기 일은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대신 그냥 돌아오지는 마십시오.

 

빠른 시간 안에 내가 일단 중국으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대안이라도 있는 걸까?

 

“이젠 정말 ‘코지’를 구할 사람은 당신들밖에 없습니다.

 

여기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곤 박실장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조 팀장, 그나마 홈쇼핑 쪽은 다행이야.

 

도대체 누가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배신을 한 건가?

 

강 이사 그 놈이지? 아무튼 처음부터 나는 그 놈이 기분 나빴어.”

 

“박 실장님 이미 지난 일이니까 그만하세요.”

 

“아니, 법적으로 대응을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또다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참, 참고로 알아 두셔야 할 게 있는데 오늘 ‘비라’ 사장이 구속되었어.

 

그리고 강 이사가 ‘비라’의 대주주 중의 하나였다는 게 오늘에서야 밝혀졌다고.”

 

통화가 끝났다.

 

진국은 책상을 짚고 한동안 머리를 떨구고 있었다.

 

“진국아, 회장님이 주신 상자.”

 

진국이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책상 서랍을 뒤져 종이 상자를 꺼냈다.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진국이 꺼낸 종이상자로 향했다.

 

진국이 칼을 들고 종이상자 모서리를 그었다.

 

종이상자에서 나온 건, 휴대폰이었다.

 

그리고 코팅된 메모지 한 장이 달랑 들어 있을 뿐이었다.

 

“선배님 이게 뭐죠?”

 

병달이 진국에게 다가들었다.

 

“그저께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회장님께서 그러셨어. 그대로 맞아 떨어졌군.”

 

봉수가 맥 잃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이라니 누굴 말하는 겁니까? 그리고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니?”

 

병달이 다급하게 물었다.

 

봉수는 중국 출장 오기 전에 만났던 신 회장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럼, 강 이사는 오래 전부터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랬을 거야.”

 

진국이 휴대폰을 들고 1번 버튼을 눌렀다.

 

팀원들은 진국의 행동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병달이 메모지에 적혀 있는 1번 항목을 슬쩍 훔쳐보았다.

 

호천수? 사람 이름인가?

 

“저는 한국에서 온 ‘코지’의 조진국이라고 합니다.”

 

병달이 진국이 들고 있는 휴대폰에 귀를 가까이 댔다.

 

중국인이었다.

 

“이 번호를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은데 누굴 찾으시죠?”

 

굵직한 목소리의 남자였다.

 

“저 호천수씨를 찾습니다.”

 

“한국이라면 신 회장님만 이 번호를 알고 있을 텐데….”

 

병달은 진국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듯 했다.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말들만 나누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편에서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저희 회장님께서 지금 방콕에 나가 계십니다.

 

일주일 일정인데 아직 사흘이나 남았군요.

 

하지만 지금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늦어도 내일 중에 회장님께서 직접 가시거나 연락을 드릴 겁니다.”

 

진국도 통화를 끝낸 후 별 시덥지 않은 통화를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선배님, 도대체 호천수라는 사람이 누굽니까? 그리고 신 회장이라는 분은 또 누굽니까?”

 

“호천수는 나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신 회장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설명해 주지.”

 

“병달 선배님, 혹시 호천수라면 말이에요.”

 

공정혜가 그제사 기운을 찾은 모양이었다.

 

병달 곁에 다가서는 공정혜를 병달과 진국이 쳐다봤다.

 

“혹시 호설암의 손자 아닌가요? 이름이 좀…”

 

“호설암?”

 

“왜 있잖아요. 청나라 말기 중국 최대 갑부 중의 한 사람 있잖아요.”

 

“아, 호설암! 그래 맞다, 맞아. 호천수.

 

방콕에도 사업체를 몇 개 가지고 있고 여기 상해에도 꽤 큰손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진국 선배가 방금 그런 사람한테 전화를 한 겁니까?”

 

“중국에 인구가 좀 많아? 같은 이름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 인물은 베일에 가려져 있어요.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른다고 하던데요.”

 

공정혜가 의외로 호천수라는 인물에 대해 그나마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진국은 그저 담담했다.

 

결정적으로 어려울 때 신 회장의 도움을 받는 게 늘 마음에 걸렸던 터였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녀의 도움 없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전화를 걸고 나자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꼴이었다.

 

병달은 답답한 심정을 달랠 길 없어 무작정 숙소를 빠져 나왔다.

 

공정혜가 팀원들의 눈치를 본 뒤 덩달아 따라 나왔다.

 

“강 이사 정말 너무 했어요. 처음에 닦달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만약에 공정혜씨라면 ‘비라’를 통째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도 의리를 지켜야죠.”

 

“그래서 난 공정혜씨가 좋아요.”

 

병달이 슬쩍 공정혜의 팔을 잡았다.

 

공정혜도 싫지 않은 듯했다.

 

“앞으로 ‘코지’는 어떻게 되는 거죠?”

 

“뭐, 중국 란제리 쇼 한번 망쳤다고 큰 변화야 오겠습니까.

 

그러고 보니까 옛날 진국 선배랑 봉수 선배가 일본에 갔을 때도

 

공문 조항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켜서 어렵게 만들었던 일도 강 이사 짓이 아니었나 싶어요.”

 

“남자들은 왜 그럴까요? 남의 떡이 커 보여서 그래요?”

 

공정혜가 병달을 보며 눈을 흘겼다.

 

병달은 눈치가 빨랐다.

 

공정혜는 인화를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꺼낸 듯했다.

 

병달은 슬그머니 공정혜의 팔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두 사람은 상해의 압구정이라고 불리는 ‘화이하이루’ 지역 쪽으로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서울보다는 위도 상으로 아래 지방이라 그런지 쌀쌀하지 않은 바람이 불었다.

 

병달은 번화한 거리로 들어선 뒤 진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정혜는 거리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백화점들과 유명 브랜드의 가게들이 즐비했다.

 

서울의 압구정보다 더 화려하고 번화했다.


“별일 없죠? 우리 머리 좀 식히고 들어갈게요.”

 

숙소에 돌아가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나저나 이번 중국 란제리 쇼 빵구 나면 우리 직원들 대대적으로 감원을 할 텐데.”

 

공정혜가 보도에 만들어진 간이 벤치에 앉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아버지도 3년 전에 명퇴 당했거든요.

 

그래도 늦게까지 버티긴 하셨는데….

 

그래도 허탈감을 못 이기시더라구요.

 

퇴직금 모아서 치킨 집 차리셨다가 조류 독감이니 해서 그만 고스란히 퇴직금 모두 날려 버리셨어요.”

 

공정혜는 남의 일 이야기하듯 자신의 가족사를 병달에게 늘어놓았다.

 

“정혜씨는 집에서 혼자예요?”

 

“오빠가 있긴 있었죠. 군대 가서 죽었지만 말이에요.”

 

역시 담담하게 말했다.

 

정말로 사람들은 가지각색이다.

 

슬픔을 잊는 방법도. 어떤 이는 남 이야기하듯 떠벌여가며 잊는가 하면

 

어떤 이는 처절하게 슬픔을 만끽하며 잊어간다.

 

그런데 공정혜는 그저 무감해 보였다.

 

슬픔이나 고통을 잊는 데 그런 방법도 있었나 싶었다.

 

“한국에 있을 땐 오빠 생각이 한번도 안 났는데

 

왜 그런지 중국에 나오니까 오빠 생각이 간절하게 나네요.”

 

병달은 딱히 그녀를 위로해 줄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그럼, 부모님은?”

 

“후, 후, 후”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아니면 그저 신음인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브라질로 도망가셨고 어머니는 지금 요양원에 계세요.”

 

병달이 머리를 굴려보았다.

 

결혼할 상대로는 완전히 꽝이었다.

 

병달이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의 계산 속이 치졸하게 느껴졌다.

 

‘위로는 못할 망정….’

 

“우리 고량주 마시러 갈까요?”

 

겉모습과는 달리 공정혜도 가슴이 아픈 듯했다.

 

의외였지만 병달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 같은 날 스트레스 풀지 않으면 언제 풀겠어요.”

 

공정혜가 벤치에서 빨딱 일어났다.

 

“선배님들이 우리 술 마신 거 알면 노발대발할 텐데…”

 

병달은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부서 내에서 공정혜의 별명은 여자 병달이였다.

 

회식 자리 좋아하고 뒤끝 없고 소탈하고 털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피부 곱고 적당한 몸매와 홍대 디자인을 전공한 실력까지. 여자로서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아니 직장 남자들이 좋아할 성격이었다.

 

“에이, 술 한잔했다고 선배님들이 야단이라도 치겠어요.”

 

공정혜는 이미 요란한 인테리어의 술집을 발견한 뒤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병달은 아무래도 진국과 봉수가 마음에 걸렸다.

 

술집 입구에서 병달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마음이 너무 울적해서요.”

 

“그래, 많이 마시진 마라. 누가 올지 모르겠지만 내일 여섯 시에 손님이 오니까.”

 

진국 선배가 흔쾌히 승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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