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갈림길-5
“여보세요?”
“어. 유미씨. 잘 있었어?”
“어, 나야 뭐 잘 있지. 이크는 지금 어디야?”
“어디긴. 자기가 부탁한 천도제 문제로 아는 만신 집에 와 있어.”
“거기 서울이야?”
“아니. 지방이야.”
“나 자기 너무 보고 싶어서 지금 거기 내려갈까 봐. 그 만신도 한번 만나 볼 겸.”
수익이 잠시 가만히 있다가 대답했다.
“자기가 뭘 알아? 내가 다 알아서 일정을 잡아 놓을게. 걱정 마.
그리고 곽 사장에게 모레쯤 잔금 준비하라 이르고. 굿은 아마 주말이 좋겠지?
여기 일 빨리 처리하고 서울 한번 올라갈게.”
수익은 평상시 그대로였다.
“이번 일 잘되면 수익씨 그렇게 애쓰는데 자동차 하나 뽑아 줄까 봐.
신형 쏘나타나 K5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유미는 아까 봄 직한 차종을 둘러대며 말해 보았다.
“아무리 돈 없어도 유미씨한테 차까지 받으면 나 쪽팔려.
나도 곧 돈 생길 데가 있어. 걱정 마. 나도 새 차 뽑을 거야.”
곧 죽어도 검은색 중형차가 있다는 말은 안 한다.
“알았어. 자존심에 스크래치 났다면 미안해.
내가 수익씨가 고수익이라 좋아하는 거 아닌 거 알지?
그냥 맑은 사람이라 좋아하는 거야. 미소가 따스한 남자라서.”
유미는 마지막 말을 간절한 기분으로 뱉었다.
“철봉이라 좋아하는 거 아니고?”
“ㅋㅋ… 그래서 더 좋아하지. 레알 철봉.”
“내가 철봉이면 자긴 용광로야. 보고 싶어. 사랑해.”
“미 투.”
유미는 자연스레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하고 나니 의혹이 해소된 게 아니라 더 헷갈린다.
아, 내가 잘못 본 거야.
그 짧은 순간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남자를 수익이라 오해하다니.
게다가 버버리 상표의 자주색 체크무늬 목도리는 이 세상에 단 하나가 아닐 테니….
사람이 이상해지는 건 순간이구나.
유미는 애써 그렇게 합리화했다.
그러나 유미가 아직도 수익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건 여전했다.
게다가 왜 그에게는 그리 관대했던 건지….
그는 알수록 더 신비한 사람 같았다.
이번에 곽 사장 일만 해도 그렇다.
유미가 대강의 일을 얘기하고 함께 꾸민 일이지만,
기대 이상으로 그는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유미도 타고난 연기력이라고 제 스스로 생각하지만,
수익이야말로 타고난 연기자 같았다.
그게 연기가 아니라면,
그가 정말로 신의 섭리를 전하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움직이는
용한 무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희대의 사기꾼이거나.
수익의 그런 면이 마냥 신비롭고, 재미있는 캐릭터라고만 생각했다.
수익에 대해 무언가 더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윤동진이 호텔 음식이라면 마음 내킬 때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만만하고
다양한 분식집 메뉴처럼 수익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다음에 수익을 만나면 그의 신상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해야겠다.
유미는 그제야 커피 맛이 혀에서 제대로 느껴졌다.
이 모든 게 그의 철봉 맛에 너무 빠져 버린 탓인 게야.
그 엄준한 자아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에 제대로 맛을 본 새송이,
아니 쇠송이의 맛이 슬금슬금 생각나 유미는 픽,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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