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갈림길-6
수익을 다시 만난 것은 토요일 밤이었다.
저녁에 수익이 아는 만신이 주재하는 홍 마담의 천도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 마담의 진오귀굿은 송추 가는 길목의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굿당에서 열렸다.
유족다운 유족도 없었지만 일부러 연락하지 않고, 수익과 유미, 그리고 곽 사장이 참석했다.
해 저물 무렵 시작된 굿이 끝나고 정리된 것은 열두시가 넘어서였다.
굿이 끝나자 모두가 진이 빠져 있었다.
특히나 곽 사장의 몰골은 처참했다.
그래도 그는 일견 홀가분해 보였다.
굿판의 중간에 망자가 무당의 입을 빌려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데,
갑자기 곽 사장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리고 하염없이 몸을 떨어 대더니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여자처럼 변하더니 앙칼지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유미가 기억을 살릴 것도 없이 예전에 들었던 홍 마담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아이고, 곽 상무! 자기야. 난 자기가 정말 그럴 줄 몰랐어.”
홍 마담은 자신의 업소에서 예전에 곽 사장을 부르던 호칭을 사용했다.
곽 사장이 몸을 떨어 댔다.
“내가 죽던 날, 나를 왜 불러낸 거야?
내가, 그 비 오는 날 새벽에 자기가 부르지 않았으면 내가 왜 그 길을 달렸겠냐고.
그 황천길로 통하는 그 길을 왜 내가 나섰겠냐고.
곽 상무야,
그럴 줄 몰랐다.
자기가 돈 받고 끄나풀이 되어 날 불러낸 거 아니냐.
아이고! 억울해. 아니라고?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고?
나를 죽인 놈은 그놈이지만,
나를 사지로 불러낸 건 바로 너 아니냐고.
하늘은 속여도 귀신은 못 속인다아!”
홍 마담의 목소리를 내던 곽 사장도 잘못했다며 연방 손바닥을 비벼 대었다.
그러다가 공포와 참회에 젖은 눈으로 흐느끼며 망자를 위해 비손을 했다.
한바탕 춤사위로 놀아난 무당이 공수를 전했다.
“경민 아부지, 경민 아부지! 자기가 나를 사지로 인도한 나쁜 놈이지만,
그래도 내 몸에 씨를 뿌려 함께 아들을 거둔 내 남자잖아.
우리 경민이, 불쌍한 우리 아들,
자기 호적엔 얹혔지만 애비를 애비로 부르지도 못하는 불쌍한 우리 아들,
내 대신 잘 돌봐 주소.
자기에게 원하는 건 그거 하나뿐.
그리고 나를 이렇게 만든 그놈을 생각하면 너무 억울해서 이승을 떠날 수가 없지만,
나는 이제 이승의 몸이 아니니 자기와 경민이가 내 한을 잊지 말고 언젠가는 한을 풀어 줘.
나 모든 것 다 훌훌 털고 갈라네.”
굿을 주재한 만신에 의하면 망자의 혼이 저승으로 무사히 천도되었으며
기러기로 환생했다고 했다.
유미는 생전 처음 본 굿이 꽤 흥미롭기도 했지만 실로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귀신은 살아 있나 보다란 생각이 들었다.
곽 사장이 사실대로 이야기했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결정적인 비밀은 숨기고 있었다.
귀신의 입을 빌리면,
그는 사건 당일 날 홍 마담을 불러내어 죽음으로 몰게 했고,
홍 마담 아들이 원래 자기 씨라는 걸 속이고
윤 회장에게 돈을 받고 자신의 호적에 올린 인간이었다.
아아, 인간의 끔찍한 비밀과 자기 본능이란 얼마나 추악한가!
굿이 끝나자 그는 부리나케 자리를 떠났다.
유미는 아직도 굿의 광기와 열기에 정신이 얼얼했다.
그것은 수익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밤도 너무 늦은 데다 피곤하기도 해서 두 사람은 근처 모텔에 들었다.
굿판의 음식을 싸 온 걸 풀고 두 사람은 소주를 들이켰다.
“정말 추악해.”
“누구?”
“곽 사장.”
“그래도 순진하고 착한 편이지. 제 발이 저리니까 돈도 그만큼 썼지.”
수익도 병나발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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