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갈림길-4
유미는 유 의원의 집을 나왔다.
유 의원이 솔직히 다 털어놓은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유미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유 의원은 유미에게 약속을 했다.
유미가 정말로 위기에 처하게 될 때에는 유 의원도 유미 편을 들어 도와주겠다고.
유미는 이번에도 몰래 녹음을 했다.
어쨌거나 이 정도의 정보도 감초처럼 분명히 쓰일 때가 있으리라.
유미는 성북동을 나와 북악터널을 지나 평창동으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김 교수가 생각났다.
그의 집 근처에 꽤 괜찮은 카페가 있었던 것도 기억났다.
전화를 해서 김 교수가 있으면 커피라도 한잔하고 아니면
오랜만에 조용히 혼자 차를 마시면서 머리를 정리하고 싶었다.
전화를 거니 마침 김 교수는 집에 없었다.
지나는 길에 그냥 생각나서 전화한 거라 하니
그는 이참에 조만간 배 이사장과 저녁식사 자리를 한번 잡아보자고 나섰다.
그리고 그때 미리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유미는 약속을 잡았다.
여차여차하면 차라리 미술관을 그만두고, 김 교수가 미는 대로
배명복 이사장에게 잘 보여 교수가 될까?
섹시하고 지적인 독신 여교수도 나쁘진 않지. 그래,
평창동 양지바른 언덕 위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오유미의 팔자를 다시 디자인해보자.
유미가 주차하려고 급히 차를 세우는데 따라오던 차가 주춤, 했다.
무심하게 뒤따라오다가 유미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을 줄을 몰랐던가보다.
유미는 미안하다는 표시로 비상등을 깜박이며 백미러로 뒤차의 운전자를 잠깐 보았다.
순간, 차는 마치 유미의 시선을 피하기라도 하듯 쌩하니 언덕길로 달려 내려갔다.
그런데 순간, 아주 찰나적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유미는 이미 차가 사라진 언덕길을 바라보았다.
소나타? SM5? 자동차는 평범한 검은색 국산 중형차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 검은 차가 아까부터 유미의 뒤를 쫓아왔던 것 같다.
유미가 김 교수에게 전화를 하며 한두 번 백미러를 무심히 보았을 때부터
그 검은 차가 있었다.
혹시 나를 미행…? 미행도 미행이지만, 문제는 그 안의 운전자가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란 직감이 차가 떠나자마자 들었던 것이다.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남자.
그래서 얼굴의 윤곽과 표정을 알 수 없는 남자.
유미는 카페로 들어가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다.
정리는커녕 오히려 머릿속은 더 뒤죽박죽, 가슴은 더 울렁거렸다.
누군가 나를 미행했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유미의 동공이 갑자기 확대되었다.
그가? 아닐 거야. 하지만 손가락 끝이 싸늘해졌다.
유미는 커피를 담은 뜨거운 머그잔을 움켜쥐고 커피를 한 모금 목 안으로 흘려 넣었다.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인간의 눈보다 뇌가 보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할지 모른다.
그 짧은 순간 뇌는 전체적인 분위기로 그를 순식간에 감지했다.
그가 비록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할지라도 한두 가지 검색어로 문건을 찾듯 뇌는
그의 한두 가지 특징으로 그를 인식했다.
게다가 눈은 그의 목에 감긴 머플러를 보았다.
그것은 얼마 전에 유미가 선물한 버버리 상표의 남성 머플러였다.
흔한 게 그 상표의 체크무늬 목도리이긴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고른 자주색의 체크 목도리는 그리 흔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라면 왜 유미에게 알은척하지 않았을까?
유미는 머리를 흔들었다.
어쩌면 내가 신경과민일지도 몰라.
홍 마담에게 너무 감정이입이 되어 있었던 거야.
죽기 전에 홍 마담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감시받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겠지?
그러니 그런 유서를 남겼겠지.
하지만… 유미는 결국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눌렀다.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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