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갈림길-1
유미는 성북동을 향해 차를 몰았다.
회사에는 컬렉셔너를 만난다는 핑계를 대고 나왔다.
강애리가 며칠 전부터 관장으로 들어앉자 싫든 좋든 상관인 그녀에게 업무 보고를 해야 했다.
업무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강애리는 자신의 라인으로 재무와 관리팀 직원을
더 보강했다.
실제로 관장 없는 미술관을 유미가 용준과 몇몇 큐레이터와 직원으로 임시 운영할 때와는 달리
강애리는 능력과 실력에 따라 조직을 재개편하려 할 것이다.
한동안은 유미가 필요해서 살살거릴지 모르지만, 하룻강아지가 좀 크면 짖어대며 유미를
문 밖으로 쫓아낼지 모른다.
애초 유미의 인사권자인 동진은 애리가 말한 지난 주말에 귀국하지 않았다.
그걸 보니 애리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흥! 동진의 마누라나 되는 것처럼 아는 척하더니….
유미에겐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애리에게 솔직히 그걸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답답했다.
성북동에 오자 유미는 일부러 윤 회장의 집,
아니 윤동진의 집이기도 한 저택 앞을 지났다.
물론 길바닥에 윤동진의 자동차 같은 게 보일 리는 없었다.
유미는 그 앞을 지나며 아슬아슬하게 비디오테이프를 빼돌리던 날의 전율을 다시 느꼈다.
거기다 이번에는 증오의 전율까지 더해졌다.
그동안 곽 사장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홍 마담은 죽기 전에 유형무형의 협박을 꽤 당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겠지.
유미는 그 집 앞을 지나 또 다른 언덕길을 올라갔다.
차로 겨우 5분 정도 거리에 친구이자 적이 되었다는 유 의원의 집이 있다.
유미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내친 김에 유 의원을 만나보기로 했다.
곽 사장이 태워버린 홍 마담의 수첩과 장부가 없는 것이 너무나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야비한 윤 회장의 치부를 어떡하든 수집해야 한다.
이것이 약한 자의 옵션이자 의무다.
그 대결이 총을 갖고 있는 자와 비록 돌 몇 개로 겨루는 격이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돌도 많으면 좋은 것이다.
행주대첩은 여인들이 행주치마로 나른 돌로 저항해서 이긴 싸움 아닌가.
어쨌든 무모하게 대든 홍 마담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유 의원의 집에 도착하자 초인종을 눌렀다.
인규와 이혼 소송 중인 지완은 마침 아이들과 해외에 나가 있는 중이다.
두 아이를 캐나다에 유학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집안에 전 여사는 보이지 않고 가정부만 있었다.
유 의원은 휠체어에서 유미를 맞았던 지난 여름보다는 건강해 보였다.
“웬일이야? 지완이도 없는데 나를 다 보러 오고?”
“그냥 아버님이 보고 싶어서요.”
유미는 늘 부르던 대로 의원님이라는 호칭 대신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꺼냈다.
아니나 다를까. 유 의원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지완이 없으니 적적하시죠?
제가 지완이 없는 동안 딸 노릇 좀 하려고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지완이는 언제 와요?”
“애들이 적응을 꽤 잘하나 봐. 한 보름 후면 올 거 같다는데….”
가정부가 과일과 차를 내왔다.
“전화 드린 대로 저희 미술관에서 작고화가전을 하는데
아버님이 소장하고 계신 박 화백 그림이 꼭 필요해서요.
전시 때 잘 쓰고 돌려드릴게요.”
유미는 일단 공적인 용건을 말했다.
“알았어. 책임지고 알아서 해.”
유 의원이 웃으며 말했다.
“저어, 그리고 또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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