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악어와 악어새-18
“하지만 무엇보다도 죽는 날까지 곽 사장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해.
윤동주의 서시를 외우며 수양 좀 해야겠어.
그러니 내 앞에선 티끌 하나 속일 생각 말고 다 말해야 돼. 알았어!?”
수익이 고삐를 당기듯 곽 사장을 채근했다.
“예, 알겠습니다.”
얌전한 말처럼 곽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압적으로 말하던 수익이 이번에는 연민을 담아 말했다.
그게 꼭 기사가 달리는 말의 고삐와 채찍을 쥐고 마음대로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내 물론 망자를 위해서는 날을 잡아 지노귀굿을 해줄 거야.
망자의 이승의 한을 없애고 고를 다 풀어줘야 해.”
“암요, 그래야죠. 저승으로 고이 보내야죠.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그래야 해코지를 안 하겠지요.”
“나쁜 귀신은 없어. 다 나쁜 인간이 나쁜 귀신을 만드는 법이야.
죽으면 다 끝날 일 같지? 나쁜 일 하면 귀신한테 혼나는 거야.”
“어휴, 근데 그게 왜 저여야 합니까?”
곽 사장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나쁜 짓을 한 것만 죄가 아니야.
그걸 보고도 가만있는 것도 죄고. 약속을 안 지킨 것도 죄지.
망자는 그대한테 그게 서운한 거겠지.”
곽 사장이 머뭇거리다 결심한 듯 말했다.
“이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거라 발설하기도 그렇고…누님은 살해당한 거 같아요.
계획적인 뺑소니 사고로 말입니다.”
“누가 죽인 건데?”
“그게….”
“그대가 죽인 건 아니잖아. 죽인 놈은 멀쩡히 잘살고 있고 말이지.
그런데 그놈도 오래 못 가. 길면 자식 대에 망할 거고.”
“그럴까요? 못된 놈이 더 활개치고 사는 세상이 더러워요.
하긴 그런 것에 빌붙어 사는 나도 그렇지만,
우리 같은 약한 것들이 뭐 힘이 있어야죠.
그래서 말인데요.
이건 누구한테 한 번도 말 한 적이 없는 건데…
사실 천도재 할 때도 말하고 싶지 않은데.”
“망자에게 거리끼는 게 있으면 지금 티끌 한 점 없이 얘기하고 용서를 구해.
그리고 굿할 때 깨끗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야지.
천도재 때 귀신의 입을 빌려 다 까발리는 거보다는 여기서 말하는 게 나을 거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저는 늘 입조심을 하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 여긴 새도 없고 쥐도 없어.
사람이 듣는 게 제일 무섭지. 그런데 여기 우리는 사람이 아니야.
무당이지. 걱정 마, 얘도 반은 무당이야.”
수익이 턱짓으로 유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미는 점점 더 수익의 수완에 놀라며 어쩌면 수익이 정말로 무당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맞습니다. 사실 나나가 찾아와 그런 얘길 했을 때 저는 뒤집어질 만큼 놀랐어요.
저도 누님이 그런 식으로 죽을 줄 알았거든요.
아마 누님에게 제가 죄를 지은 거라면….”
“아는 데 가만히 있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게 지금 생각하니까 죄인 거죠.
당시에는 설마 했거든요.
저 잠깐, 냉장고에 있는 냉수 좀 마시고요.”
곽 사장은 이제 목을 축이고 입을 열 자세를 취했다.
유미는 핸드백에서 잠깐 휴대폰을 꺼내 들어온 문자를 확인했다.
아니 휴대폰의 문자를 확인하는 척하며 녹음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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