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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악어와 악어새-10

오늘의 쉼터 2015. 4. 5. 09:51

<294> 악어와 악어새-10 

 

 

 

곽 사장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 용하다는 무당을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네….”

유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디 가서 이 답답한 걸 호소하겠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하고 땅 파고

 

소리지르는 거보다 무당한테 가서 속 시원히 말하고 누님도 좋은 데로 보내드리고 하면

 

좋을 거 같아. 연 사흘 내리 흉한 꿈을 꾸고 나니까 당최 정신이….”

“생각 잘 하셨어요. 그 괴로움 제가 다 알아요.”

“다시 수사하고 까발리고 하면 서로 다치고 하니까 그렇게 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렇죠. 그래도 홍마담 언니의 한을 풀어줘야 하니까 윤 회장의 악랄한 잘못을 파헤쳐야 해요.

 

그래야 언니가 해원(解寃)을 하죠.”

“그래 결국 그래야겠지. 나도 좀 알아볼게.”

“제가 조만간에 그쪽 계통의 전문가 분이랑 미팅을 주선할게요.

 

제가 그렇게 시달려서 그쪽 분야라면 저한테 맡기세요.”

“그래. 알아봐 줘. 그나저나 나나도 좀 신통력이 있는 거 같아.

 

꿈에 누님이 머리에 피를 줄줄 흘리고 나타났다 했지?

 

그 누님이 나중에 들은 얘긴데 머리가 으깨져서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하더라고.”

“예, 제가 좀 그래요. 저희집 핏줄이 좀 그래요.

 

제 증조할머니가 그런 무당기가 있었다네요.

 

저도 관심이 많고 관상 공부 같은 건 안 해도 사람 척 보면 뭔가 훤히 보일 때가 있어요.”

유미는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증조할머니가 누군지 알 게 뭐람.

“아, 그래?”

“곽 사장님도 의외로 심기가 약해서 귀신이 잘 붙을 상이에요.

 

원래 정이 많고 맺고 끊는 거도 좀 약하시잖아요.” 

 

“아, 그래. 맞아. 맞아.”

훤히 보이긴… 유미는 코웃음을 쳤다.

 

곽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야말로 훤히 보이는 듯했다.

“그런 나나는 사람이 그렇게 훤히 보인다면서 좋은 사람 골라서 팔자 좀 고치지 않구…

 

그래, 외국엔 남자 쫓아갔다가 잘 안된 거야…?”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잖아요. 그럼 무당이 다 팔자 고치지, 무당 노릇은 왜 하겠어요.”

“하긴 그래.”

“암튼 이 문제는 제가 도와드릴 테니 염려 마세요.”

“그래. 알았어. 고마워.”

곽 사장과 통화를 끝내고 유미는 갑자기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미술관 건물은 금연 건물이었다.

 

얼마 전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는 윤동진과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끊으려고 노력했던 담배였다.

 

유미는 생각도 정리할 겸 미술관의 정원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에 용준에게 들러 담배 두 대를 빌렸다.

 

용준이 애리가 다녀가서 열 받았죠? 하는 얼굴로 유미를 쳐다보았다.

“같이 나가서 꼬실릴까요?”

“아냐. 혼자 잠깐 나가서 피우고 올 거야.”

유미는 잠깐 뒤돌아서서 용준에게 낮게 말했다.

“아무 때나 나서지 좀 마. 우리가 뭐 한 세트냐? 앞으로는 강애리 앞에서 나랑 모른 척해.”

용준이 머쓱해서 안경을 한 번 쓰윽, 올렸다.

 

아,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거지?

 

유미는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정원의 노송 아래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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