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93> 악어와 악어새-9

오늘의 쉼터 2015. 4. 5. 09:50

<293> 악어와 악어새-9 

 

 

 

유미는 가슴 깊은 곳을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이유 없는 배신감이었다.

 

윤동진의 소식을 강애리로부터 들어야 하다니.

 

언젠가부터 윤동진은 유미에게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유미 또한 그의 입장을 고려해서 개인 이메일로 짧게 안부만 주고받았을 뿐이다.

강애리를 대동하고 미술관 내부와 그림 창고, 직원들의 사무실을 돌며 안내를 해주던

 

유미에게 애리가 손을 내밀었다.

“수고하셨어요. 이만 가봐야겠어요. 다음에 제가 연락 한번 드릴게요.

 

제가 저녁 근사하게 쏠 테니까 그때 얘기 많이 나누기로 해요.”

“그러죠.”

유미는 애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여린 애리의 손을 힘주어 악수했다.

 

유미의 강한 눈빛과 악력에 애리가 잠깐 놀라는 듯 주춤했다.

 

그러나 애리 역시 만만치 않은 눈빛을 되쏘며 유미의 손을 다시 꼭 쥐었다.

애리를 보내고 나서 유미는 자리에 앉자마자 윤동진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예전 같으면 로밍이 되어 연결되어야 할 휴대폰에서 ‘없는 번호’라는 안내멘트가 나왔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휴대폰 바꿨나?

 

나만 홀로 너구리굴에 고립되어 연기에 눈이 어두워 비몽사몽간을 헤매고 있을 때,

 

윤동진과 윤 회장과 강애리는 한 팀이 되어 시시덕거리며 연막탄을 터트리고 있었던 걸까?

 

나도 빨리 무언가를 터트려야 하는 거 아닌가.

 

너구리가 아니라 스컹크가 되어 고약한 방귀라도 뿜어대야 하는 거 아닐까.

 

유미는 초조해졌다.

그때 유미의 휴대폰이 속사포 방귀를 뀌듯 요란스레 책상 위에서 진동했다.

“어, 나나? 나, 곽이야.”

“어머, 곽 사장님. 어쩐 일이세요?”

“전화로 얘기하는 게 좀 뭐하긴 한데….” 

 

“네! 무슨 중요한 단서나 증거라도? 제가 갈까요?”

유미가 급하게 물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나나는 요즘 괜찮아?”

“뭐가요?”

“나나 말을 듣는 게 좋을 거 같아.”

“제 말 들어서 곽 사장님이 손해날 일은 없을 걸요.”

“우리 만난 지 이제 한 대엿새 됐나? 어우, 나 미치겠어.”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

“나나가 다녀간 그 다음날 밤부터 이상하게 누님이 꿈에 나타나.”

“정말요?”

“그래, 그렇다니까. 머리는 으깨진 채 피눈물을 흘리며…

 

어우, 미치겠어. 나나가 말한 그대로라니까.”

그런 업소에서 잔뼈가 굵긴 했지만,

 

사실 곽 사장의 두리두리한 큰 눈은 겁이 많고 남의 말에 잘 휘둘리는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두 개의 거울이었다.

 

실비아를 통해 사전조사를 하니 곽 사장은 그런 속이 허약한 사람 특유의 미신에

 

엄청 기대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나라 정치가나 사업가가 일만 터지면 쪼르륵 점쟁이에게 달려가듯 남에게 기생하여

 

먹고사는 그도 자신의 의지보다는 보이지 않는 어떤 신의 기운에 껌뻑, 하는 유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재수도 없어. 며칠간 손님이 들지를 않아.”

“어머, 어쩌나! 그게 그러니까 곽 사장님에게 옮아갔나 보네.

 

그게 잘못하면 빙의가 된다네요.

 

홍언니 영혼이 들러붙으면 그냥 미친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전에 말한 용한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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