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 악어와 악어새-7
곽 사장은 말을 아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전에 친누이처럼 여겨왔던 홍 마담이라 할지라도 이미 그녀는 죽었다.
그리고 수십 년 단골이었다는 윤 회장과 그가 거느리고 있는 YB그룹의 그늘은 아직도
그의 업소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 있게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죽은 불쌍한 누이보다 돈줄을 쥐고 있는 원수가 더 고마운 법.
그게 바로 생존의 생리이고 논리다.
유미는 대단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으나 성과는 있었다고 자족하며 곽 사장의 업소에서 물러났다.
그림이 대충 떠올랐으나 아직까지 에스키스에 불과했다.
아귀를 딱 맞춘 그림이 완성되려면 뭔가가 더 필요했다.
회사로 돌아와 책상에 커피를 한 잔 놓고 앉았을 때 전화가 왔다.
“지영이니?”
정희였다.
“아, 언니!”
“요즘엔 왜 그렇게 연락이 없어? 많이 바빠?”
“예, 좀 바빴어요. 언니, 무슨 일이 있었어요?”
유미가 조심스레 물었다.
대답에 앞서 정희가 쿡쿡 웃었다.
“저기… 회장님이….”
“회장님이 왜요?”
“요즘엔 왜 너를 안 데리고 오느냐고 하시더라.”
“어머, 그래요?”
“네가 맘에 드시나 봐.”
“정말?”
“그래. 걔를 좀 잘 키워보라고 하시더라. 너 안마 배우고 싶다고 했잖아.”
“그랬죠.”
“넌 벌써부터 운이 좋아. 왠지 너 앞에 큰 길이 뚫릴 거 같다.”
“다 언니 덕분이죠, 뭐.”
“회장님이 언제 한번 너를 다시 데려오라고 하셔.”
“어머, 왜요?”
유미는 갑자기 가슴이 쿵쿵 뛰었다.
“어우, 얘는! 다 알면서!”
“회장님이 눈치 못 채셨죠?”
“그럼, 나도 너랑 약속한 비밀은 입도 뻥끗 안 했어.
하여간 재미로 한 일이긴 한데,
그나저나 나는 찬밥 신세로 물러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정희의 말 중에 약간의 시기심이 묻어났다.
“그럴 리가요. 어유, 언니 절대 그럴 일 없어요.
그렇다면 전 회장님한테 절대 안 갈 거예요.
언니 밥그릇 뺏고 가슴에 못질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정희가 살짝 한숨을 쉬었다.
“고마워. 그런데 일단 회장님의 명이니까,
가끔 우리 집에 오도록 해.
언제 성북동 가기 전에 몇 가지 기술은 좀 익혀야 할 거 같다.”
“고마워요, 언니. 그런데 내가 요즘에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당분간은 그렇고…
조만간 연락할게요.
회장님께도 알아서 핑계를 대주세요.”
“요즘 손님이 많은가 보네?”
“응, 언니. 실팍한 놈으로 한 놈 물 거 같아서 그래.”
유미가 일부러 소리를 죽여 말했다.
“그래. 싱싱하고 물 좋은 놈이 아무래도 낫지.
너야 눈도 좋은데 잘 골라 봐라.
뭐가 부족해서 장님 안마사를 하겠냐.”
정희는 이번에야 안심하듯 밝은 목소리로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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