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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악어와 악어새-12

오늘의 쉼터 2015. 4. 5. 09:55

<296> 악어와 악어새-12 

 

 

 

금요일 저녁에 퇴근한 유미는 집 근처의 삼겹살집에서 수익을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수익은 약간 수척해 보였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왠지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그는 무슨 생각엔가 잠겨서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수익은 유미를 보자 샤방샤방한 눈웃음을 날려 주었다.

 

마치 먹구름에 가렸던 태양이 쑤욱, 나타나 눈부신 빛을 뿌리는 것 같았다.

 

유미는 마치 자신이 태양빛에는 무기력해지는 뱀파이어인 듯 수익이 웃는 모습만 보면

 

이상하게 무장해제가 되는 게 신기했다.

 

헉! 저 웃음… 완전히 쥐약이라니까.

“이크, 잘 지냈어?”

유미도 미소를 지으며 수익의 안부를 물었다.

 

대답 대신 수익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네. 이렇게 날도 추운데 장갑도 안 끼고. 이리 와 봐. 내가 덥혀 줄게.”

수익이 유미의 손을 두 손으로 꼭 감쌌다.

 

수익의 손은 따뜻했다.

 

섬세한 긴 손가락으로 유미의 손을 자근자근 녹여 주었다.

 

이럴 땐 꼭 어린 딸을 대하는 아빠 같다.

 

수익과 결혼하면 그는 왠지 좋은 아빠가 될 거 같다.

 

유미는 잠깐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서 딸을 낳고 살고 있는 실비아를 떠올렸다.

 

그리고 수익과 결혼해서 그가 좋아하는 삼겹살 식당을 운영하는 그림을

 

잠깐 떠올려 보고는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왜 웃어?”

“…좋아서.”

“어이구, 입이 찢어지네. 고사 상에 오른 돼지머리처럼.”

유미가 입을 아, 하고 크게 벌리며 말했다.

“자, 그럼 입에다 돈 좀 물려 봐.”

수익이 장난스럽게 유미의 입안으로 손가락을 쏙 집어넣었다.

 

유미가 수익의 손가락을 살짝 깨물며 촉촉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수익이 천천히 말했다. 

 

“보고 싶었어.”

“우리 고기부터 빨리 먹자.”

유미는 종업원을 불러 소주와 삼겹살을 주문했다.

 

유미는 수익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수익도 유미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두 사람이 소주잔을 부딪쳐 건배를 했다.

 

수익이 고기를 구워 상추쌈을 만들어 유미의 입 앞에 진상했다.

“아, 해 봐. 오늘은 입에다 돈 대신 고기를 잔뜩 물리게 할 거니까.”

싱긋 웃는 수익의 말에 유미가 살짝 눈을 흘기며 한 입 가득 고기쌈을 받아먹었다.

 

수익은 정말 고기를 잘 먹었다.

 

실컷 고기를 먹고 얼큰하게 취하자 수익의 눈빛이 숯불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취기를 느낀 유미도 몸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끓어서 흘러넘칠 것 같았다.

 

한동안 휴화산이었던 몸이 오늘 밤 활활 제대로 폭발할 것 같은 뜨거운 예감으로

 

온몸이 팽만해졌다.

 

건드리기만 해도 툭 터져 버릴 거 같았다.

유미가 계산을 하려고 일어나자 수익이 쫓아 나왔다.

“내가 내려고 했는데….”

“이크! 노! 오늘은 내가 풀코스로 서비스할 거야.”

유미는 수익의 애칭을 감탄사처럼 장난스럽게 뱉어 내며 지갑을 꺼냈다.

식당에서 나오자 영하의 칼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수익이 유미의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꼭 쥐고 걸었다.

 

유미도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동진과도, 인규와도, 용준과도 이렇게 평범한 연인처럼 손을 잡고 거리를 걸은 적은 없었다.

 

유미는 수익이 주는 이런 평범한 편안함이 새삼 좋았다.

 

유미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 다른 여느 부부들처럼 수익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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