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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악어와 악어새-5

오늘의 쉼터 2015. 4. 4. 23:42

<289> 악어와 악어새-5 

 

 

 

“뭐? 무슨 소리야?”

곽 사장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허공에서 눈길을 거둔 유미가 말했다.

“제가 좀 짚이는 데가 있어서요.”

유미는 정말로 소름이 돋는 듯이 갑자기 몸을 떨었다.

“전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놀라웠던 게 아니라,

 

언니가 말한 그대로 죽은 게 너무 놀라웠어요.”

“누님이 뭐를 말했어?”

“사실 작년에 한국에 잠깐 나왔을 때 우연히 어떤 카페에서 언니를 잠깐 만났어요.

 

서로 일행이 있어서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누다가 제 연락처를 물었어요.

 

전 다음날 출국을 해야 해서 그냥 의례적으로 가르쳐줬는데,

 

얼마 후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술이 많이 취했던데 자신은 아마 얼마 못살 거 같다고,

 

누군가가 자신이 죽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자신이 생각해도 거짓말이 혀에서 살치살 녹듯이 살살 녹아 나오는 것 같았다.

곽 사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누님, 술 취하면 늘 죽고 싶다 그러긴 했지.”

“저도 그냥 술주정인 줄 알고 별로 신경 안 썼어요.

 

그러고는 전화가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신이 죽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그랬단 말이지?

 

누님이 죽음을 예감하고 그런 말을 했구나.”

곽 사장의 얼굴이 잠깐 일그러지더니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곽 사장이 자신의 이야기에 끌리고 있다고 느낀 유미는 눈을 감고 이야기를 좀 더 진행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제 꿈에도 계속 나타나는 거예요.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울면서 나타나서는 한을 풀어 달라고요.

 

살아서는 콘크리트에 갇힌 것처럼 답답했는데, 죽을 때는 철판에 짓이겨졌다고요.

 

철벽처럼 바늘 하나 안 들어가는 놈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하던가?”

“콘크리트? 철벽? 허, 참!”

곽 사장이 놀란 듯 되물었다.

 

그때 곽 사장이 혼자말로 웅얼거리는 소리를 유미는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돈 많은 놈이 뭐가 부족해서….”

유미는 이제 감이 잡혔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홍언니가 그런 사고로 죽었다고…

 

얼마나 소름끼치던지! 생각해 보세요.

 

언니와는 십년도 넘게 연락도 없이 지냈는데,

 

그런 전화가 한 번 오고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계속 자주 꿈속에 나타나니,

 

이건 뭐 제가 돌아버리겠더라고요.

 

이상하게 생각되실지 모르지만,

 

만약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제가 힘들어져요.

 

무당한테 가서 점을 쳤더니 언니의 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제가 죽을 수도 있대요.

 

가까운 사람들이 당한대요.”

“가까운 사람이?”

곽 사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장님이야말로 혈육 같은 분인데,

 

왜 뜬금없이 나한테 언니가 자꾸 나타나는지 모르겠어요.

 

사장님도 조심하세요.”

“그 무당 용해? 어디야?” 

 

“그럼요. 원하신다면 제가 그 분을 만나게 해드릴 수도 있어요.

 

어쨌거나 한을 풀어주려면 언니의 인생을 다시 되짚고 진실을 알아야 하는 거죠.

 

그리고 언니 인생과 죽음이 너무 기막히잖아요.”

유미는 그 거짓말에 제가 빠져들어 어깨를 떨며 눈물을 흘렸다.

 

아니 갑자기 신이 들린 듯 몸이 떨리며 눈물이 나왔다.

 

거짓말과 연기에 이제 신이 오르는구나.

 

유미는 곽 사장의 눈을 보며 갑자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 사람, YB그룹의 윤규섭 회장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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