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악어와 악어새-5
“뭐? 무슨 소리야?”
곽 사장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허공에서 눈길을 거둔 유미가 말했다.
“제가 좀 짚이는 데가 있어서요.”
유미는 정말로 소름이 돋는 듯이 갑자기 몸을 떨었다.
“전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놀라웠던 게 아니라,
언니가 말한 그대로 죽은 게 너무 놀라웠어요.”
“누님이 뭐를 말했어?”
“사실 작년에 한국에 잠깐 나왔을 때 우연히 어떤 카페에서 언니를 잠깐 만났어요.
서로 일행이 있어서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누다가 제 연락처를 물었어요.
전 다음날 출국을 해야 해서 그냥 의례적으로 가르쳐줬는데,
얼마 후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술이 많이 취했던데 자신은 아마 얼마 못살 거 같다고,
누군가가 자신이 죽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자신이 생각해도 거짓말이 혀에서 살치살 녹듯이 살살 녹아 나오는 것 같았다.
곽 사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누님, 술 취하면 늘 죽고 싶다 그러긴 했지.”
“저도 그냥 술주정인 줄 알고 별로 신경 안 썼어요.
그러고는 전화가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신이 죽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그랬단 말이지?
누님이 죽음을 예감하고 그런 말을 했구나.”
곽 사장의 얼굴이 잠깐 일그러지더니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곽 사장이 자신의 이야기에 끌리고 있다고 느낀 유미는 눈을 감고 이야기를 좀 더 진행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제 꿈에도 계속 나타나는 거예요.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울면서 나타나서는 한을 풀어 달라고요.
살아서는 콘크리트에 갇힌 것처럼 답답했는데, 죽을 때는 철판에 짓이겨졌다고요.
철벽처럼 바늘 하나 안 들어가는 놈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하던가?”
“콘크리트? 철벽? 허, 참!”
곽 사장이 놀란 듯 되물었다.
그때 곽 사장이 혼자말로 웅얼거리는 소리를 유미는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돈 많은 놈이 뭐가 부족해서….”
유미는 이제 감이 잡혔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홍언니가 그런 사고로 죽었다고…
얼마나 소름끼치던지! 생각해 보세요.
언니와는 십년도 넘게 연락도 없이 지냈는데,
그런 전화가 한 번 오고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계속 자주 꿈속에 나타나니,
이건 뭐 제가 돌아버리겠더라고요.
이상하게 생각되실지 모르지만,
만약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제가 힘들어져요.
무당한테 가서 점을 쳤더니 언니의 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제가 죽을 수도 있대요.
가까운 사람들이 당한대요.”
“가까운 사람이?”
곽 사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장님이야말로 혈육 같은 분인데,
왜 뜬금없이 나한테 언니가 자꾸 나타나는지 모르겠어요.
사장님도 조심하세요.”
“그 무당 용해? 어디야?”
“그럼요. 원하신다면 제가 그 분을 만나게 해드릴 수도 있어요.
어쨌거나 한을 풀어주려면 언니의 인생을 다시 되짚고 진실을 알아야 하는 거죠.
그리고 언니 인생과 죽음이 너무 기막히잖아요.”
유미는 그 거짓말에 제가 빠져들어 어깨를 떨며 눈물을 흘렸다.
아니 갑자기 신이 들린 듯 몸이 떨리며 눈물이 나왔다.
거짓말과 연기에 이제 신이 오르는구나.
유미는 곽 사장의 눈을 보며 갑자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 사람, YB그룹의 윤규섭 회장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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