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 악어와 악어새-4
홍 마담은 여성적인 미인이라기보다는 선이 굵고 시원시원한 외모와 성격의 여자였다.
사업 수완도 뛰어났지만 적이라도 애인을 만들 수 있을 만큼 품도 넓은 여자였다.
업계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그 여자를 잠시 클레오파트라란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성형한 그 여자의 코가 아주 높았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많이 못 알아봐서. 근데 그걸 핑계로 널 꼭 한번 보고 싶었어.
내가 사회 친구가 없잖냐. 담엔 꼭 나랑 술 한번 먹자. 코가 삐뚤어지게.”
실비아와 헤어져 유미는 집으로 돌아왔다.
가려움을 확실히 긁어 주는 답을 얻진 못했지만, 심증은 조금씩 굳어져 갔다.
곽 상무의 전화번호를 따 놓긴 했지만, 그가 순순히 내막을 밝혀 줄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유미는 다음 날 곽 상무에게 전화를 해 보기로 결심했다.
유미가 자신을 소개하자 곽 상무는 유미를 기억했다.
유미는 당시 한동안 누구나 탐내는 에이스였다는 걸 고맙게도 그가 기억했다.
그뿐 아니라 반가워하며 영업을 하기 전인 오후에 가게로 들르라고 했다.
유미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식사를 하고 선릉역 근처의 업소로 그를 찾아갔다.
그는 이제 곽 상무가 아니라 오너가 되어 있었다.
오후 두 시의 업소는 적막했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유미를 맞았다.
양조위를 닮은 촉촉한 큰 눈은 여전했으나 머리는 브루스 윌리스 같이 훤히 벗겨진 남자가
오랜 직업적 혜안으로 유미를 1초 안에 스캔하고 투시했다.
“아, 나나! 그 미모는 여전하네. 우리, 홍 마담네서 일할 때 몇 번 만났지? 기억 안 나?”
곽 사장은 그것부터 대뜸 물었다.
홍 마담 가게의 지배인이었던 곽 사장은 그녀와 동향 출신이라
오누이 같은 사이라는 걸 실비아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기억하죠. 홍 언니가 정말 남다르게 생각한 분이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수빈’을 금방 떠서 그렇죠.”
“그래, ‘수빈’의 에이스라 놓치기 아까웠지만, 프리로 뛰는 게 나았지 뭐. 요즘 뭐해?”
“예, 그냥 이것저것….”
“지금 즉흥적으로 생각한 건데,
별 하는 일 없으면 우리 업소 하나를 좀 맡아서 해 주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
유미는 곽 사장의 미끼를 살짝 물었다.
“아, 그래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그런데 궁금한 거 몇 가지만 대답해 주세요.”
“그래, 알았어. 요즘 마담 하나가 골치를 썩였는데 귀인이 나타난 거 같네.”
이쯤에서 유미가 용건을 꺼냈다.
“그런데 제가 그동안 외국에 있다가 홍 언니 소식을 얼마 전에야 알았어요.
정말 너무 속상하고 기가 막혀서…. 제겐 맏언니 같은 분이었는데.”
“그러게. 그 누님 일은 안됐어.
말년엔 돈도 없이 고생 많이 했지. 아들도 아직 어린데….”
“왜 돈이 없어요?”
“재산 다 뺏기고 그 누님, 도박과 술에 빠져서….”
“그럼, 마담 언니가 이 바닥을 뜰 당시의 스폰은 누구죠? 물론 돈이 많은 사람이겠죠.”
“근데 말야, 언제부터 일은 할 수 있지? 일단 내일부터 나와서 분위기를 좀 보라고.”
곽 사장은 자꾸 화제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때 유미가 갑자기 눈길을 곽 사장의 대머리를 지나 벽의 어느 한 점에 고정하며
신들린 여자처럼 말했다.
“전 언니가 그렇게 죽을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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