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악어와 악어새-1
강애리가 미술관의 관장으로 취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었다.
미술관의 방 하나를 관장실로 꾸미는 내부공사가 시작되었다.
본사로부터 미술관 관계 서류나 전시 기획의 계획서 등 보고서류를 정리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 모든 일들이 동진이 없는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길어야 한 달 안에 모든 판도가 바뀔 것이다.
어쩌다 한 번 간단한 이메일로 연락하는 동진의 해외출장은 길어지고 있었다.
미술관의 분위기는 서서히 변화되고 있었다.
그동안 실세였던 유미의 자리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직원들의 기강도 느슨해졌다.
다만 ‘가장 비싼 거시기 살 1파운드’를 잡고 충성을 맹세한 용준만이 조만간 실세로
화려하게 등극할 강애리를 무력화할 계획과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윤 회장의 집에 잠입해 들어가서 비디오테이프를 빼돌린 1단계 미션이 일단 성공했으므로,
유미는 용준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쌤, 하룻강아지 같은 애는 걱정 마세요.
살살 키워서 오히려 보신용으로 잡아 먹어버려야죠.”
스테이크를 썰던 용준이 말했다.
“걔가 그렇게 만만한 똥개는 아닐걸?”
“미술관 경영은 무슨! 우리 같은 수족들이 잘 해줘야 움직이지,
혼자서는 꼼짝도 못할 걸요. 그래 봤자 겨우 꼬리나 칠 줄 알 텐데요, 뭐.”
와인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유미가 말했다.
“꼬리 치는 거도 중요하지.”
용준이 유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강아지가 꼬리 치는 거 하고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꼬리 치는 거 하고는 차원이 다르죠.”
“누가 구미호라도 된다는 거야?”
용준이 유미를 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쌤, 제 말은요, ‘전설의 고향’을 찍으세요.
구미호는 어떡하든 남자를 홀리게 해서 목적을 이루잖아요.
쌤도 YB 그룹의 전설의 여인이 되면 좋겠어요.
윤 이사님하고 결혼, 꼭 성사되면 좋겠어요.
저도 도울 수 있는 한, 힘껏 도울게요.”
유미는 용준을 건너다보았다.
“진심이야? 이유는?”
“제가 만약 쌤 같은 여자라면 저도 그런 꿈을 가질 거예요.
그런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남자는 무슨 수를 써도 성공을 이루진 못해요.
여자보다 더 힘들어요.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쌤, 전 2인자의 삶이 좋아요.
쌤이 성공하면 절 기사든, 비서든 써주세요.”
“참 그 충성이 눈물겹네. 남자가 왜 그렇게 포부가 작아?
용준씨야말로 딱 애완견 강아지같이 왜 그래?”
“쌤, 저는 가끔 여자로 태어나면 좋겠다란 생각도 해요.
수컷들의 세계는 너무 힘들어요.”
용준이 포도주를 한 모금 들이키며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강아지가 관장으로 오면 어쩌면 쌤과 저는…그냥 개털 되는 거잖아요.
쌤 치마끈 붙들고 미술관에 매달려 있는 제 처지도 불안하고 한심하고…
에잇, 우린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이라구요.”
“올 오어 낫싱이라…
뒤로 물러설 데 없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은 뭐든 목숨을 걸지.”
“그러니까 저도 쌤한테 이렇게 충성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용준이 자신의 충성도를 재확인시키며 진지한 눈빛으로 유미를 응시했다.
유미는 이 충견에게 오늘 밤 떡 하나를 줄 건가를 잠깐 생각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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